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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떻게 살아야 하지” – 저선량지대 후쿠시마를 살다 (2018년 3월호 소식지 게재)

오코시 료지선생님이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팜히라노 81호에는 2017년 10월 21일 팜히라노와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분들과의 교류에 대한 기사가 있어 회원분들과 공유하고자 싣습니다.

일본 지역단체인 국제우호문화센터(IFCC)의 주선으로 두 단체가 교류하게 되었고 팜히라노 단체회원 40여분과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분들 20여분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교류회에서 팜히라노는 희곡 “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낭독하였는데 이 시는 시낭독회나 고교생 연극부, 그리고 반다이 다르크모임 등의 지원을 받아 소아갑상선암으로 고민하는 젊은 여성의 과제제기와 지역 사람들의 대화, 그리고 의과대학의 문제점 등을 호소한 희곡입니다.

낭독 후 동시통역의 한계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이 나왔다고합니다.

‘중학생과 고교생은 방사능을 알고 있는 것인가. 또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베트남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 ‘병든 사람은 몇 명 있는가. 정부가 숨기고 있지 않는가’(가무단원).

 

*<파일> 나, 어떻게 살아야 하지.hwp(전문) : 파일명 클릭하시면 바로 다운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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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저선량지대 후쿠시마를 살다

 

<등장인물>

하나꼬  20세. 갑상선암 재발, 폐에 원격 전이. 대학을 퇴학, 자택 요양 중.

할머니  72세. 조카인 하나꼬와 동거.

아버지  46세. 공장 근무

가와시타  국가 명으로 현립의대 파견. 의대부학장. 핵발전소 영향 건강관리 중심인물.

스즈키  63세. 현립의대부장.  갑상선암 임상의. 국가의 위임에 고투.

다츠오  71세. 2014년 갑상선에 13밀리 결절 발견. 2016년 12월 의대에서 전적全摘 수술.

요시에   65세. 다츠오의 처. 농사일 하면서 아침 3시간의 알바와 손주 돌보기의 나날.

가토  68세. 와규(和牛) 30마리 축산농가. 장기 외 종양으로 몇 번이나 절제. 항암제 복용 중.

 

<제1막>

2017년 1월 성인의 날을 앞둔 하나꼬 집 오코타니 가족

 

하나꼬  (한숨을 쉬듯이)낼 성인의 날이네. 내가 스무 살까지 살 줄은 생각지 못했네

 

할머니  하나꼬야, 그런 말 하지마. 나까지 슬퍼지잖아. 하나꼬가 앞서 가는 건 생각할 수 없었어

(할머니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아버지   음, 하나꼬야. 산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중요해.

할머니랑 아버지 앞에서 죽는다는 생각하면 안 돼

(사이를 띄운다. 분함에 받혀서)

갑상선암으로 이렇게 젊어서부터 대학도 그만두고 수명을 신경써야하다니…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핵전 사고만 없었다면…

 

나레이터

하나꼬는 지진재해 당시 중학생이었다.

후쿠시마시 고교에 진학하기로 되어 있어 교복을 주문하러 후쿠시마역 앞 백화점에 가서 건물 밖에서 30분 정도 마스크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후쿠시마시는 당시 최대 24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했다.

이듬 해, 하나꼬는 현립의대에서 ‘심각한 상태다…’라며 갑상선암을 선고받았다.

고교3학년 여름방학 때 수술했다.

이 때 이미 의사가 ‘갑상선암은 방사능 영향이 아니다, 그리고 입 밖에 내면 차별당한다’며 갑상선암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하나꼬 (좀 억울한 목소리로 멀리를 바라보며 호소하듯이)

나, 웹디자이너나 학예원이 되고 싶어 졸업하고 현 밖의 예술계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입학 후 건강진단에서 ‘혈액검사 결과 이상’을 선고받아 현립의대에서 갑상선암 재발이라고 했습니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다니기 시작한 대학도 퇴학했습니다.

10월에 재수술. 왼쪽 갑상선과 임파절을 절제. 이것으로 갑상선은 모두 적출하게 되었습니다.

 

나레이터

하나꼬는 다시 폐전이도 판명되어 15년 4월에는 방사선 치료, 100밀리시버트의 방사성요드 캡슐을 먹고 전이한 암세포를 파괴한다는 요법을 받았다.

캡슐을 먹기 2주일 전부터 식사제한. 좋아하는 과자도 먹을 수 없었다. 음료는 물이 유일.

3일간 격리생활을 해야 했다.

지금도 일을 하고 있지 않다. 일에서 받는 차별은 그녀가 갑상선암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발생하고 있었다.

 

하나꼬   (울면서 …절망적으로) 몸도 마음도 부서질 것 같아서 늘 불안하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레이터

소아갑상선암은 공식적으로는 2017년 3월에 191명이다.

이것도 현 검토위원회도 국가도 다발하는 이유가 과잉진단이나 스크리닝 효과라고 방사능 영향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경과관찰 7200여명의 결과를 숨기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또 후쿠시마현 갑상선암 수술자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1082명. 연평균 216명이다.

이것은 2010년 지진재해 전에 비해 78%나 증가했다.

해마다 증가하여 2013년 이후는 2배 이상이나 되었다.

아이들만 피폭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히라노 지구만 해도 148세대 중에 남성 4명이 갑상선에 이상이 생겼다.

 

 

<제2막>

2017년 6월, 의대 임원실 안에서 가와시타 부학장

 

가와시타   (독백) 심각해지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예후가 좋으면 기만했다.

또 ‘원인은 방사능이 아니다, 갑상선암을 말하면 차별 당한다’고 나가사키에서도 히로시마에서도 썼던 패턴이야.

심각하면 더 효과가 나타난다. 일본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리스크는 어쩔 수 없었다.

4세 아동이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사실과 B등급으로 판정된 270명의 경과 관찰자를 은폐했는게 발각되어 낭패였어.

그래도 아직 어디서도 책임추궁은 하고 있지 않아.

다음 검토위원이 바뀌면 논쟁은 다시 문제 삼지 않을 거야. 참고 견뎌줄 위원회면 된다.

우리는 아직 밀실 안에 있다.

(사이를 띄우고)

그러나 현의 갑상선 수술자 증가는 어떻게든 숨겨야만 하는데…

아직 국회 밖으로 문제는 퍼지지 않았다.

매스컴과 의원은 잠재우고 있는데 하여간에 의대의 실태가 문제다.

어떻게든 5배 이상의 수술이다… 갑상선 뿐 아니고.

 

스즈키  (좀 당황스럽게 입실한다)

선생님, 최근에 여기서 수술한 사람이 수술 실태를 보고하면서 좀 리얼한 얘기가 나돌아 도쿄에도 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가와시타   흠. 그 암조직을 달라고 요청한 놈이군.

뭐 연구시료로 나가사키대학에 보내버려도 현민은 납득하겠지.

요전번 프리랜서 기자에게 건네준 기사자료를 살펴보아도 전체 숫자는 알 수 없을 것이고.

진료행위와 개인정보 덕에 비공개가 가능하고.

문제는 극히 일부의 과격파와 프리랜서와 시끄러운 기자뿐이야.

 

스즈키   그렇죠. 경찰도 선전활동을 수완 좋게 하고 있는 듯하고 입소문 피해 대책도 ‘가이누마’ 선생들 생산조합과 상업/생협까지 합세해 잘 세우고 있습니다.

(조금 사이를 두고)

그래도 선생님, 갑상선 수술은 해마다 증가하고 우리는 연 70건에서 80건 대 수술로 평소의 5배 이상입니다.

아이소토프도 1상 밖에 가동하고 있지 않는데, ablation에서 기다리게 하고 있지만요…

오염수 문제처럼 끝이 없는데 이쪽은 살아있는 인간이니까 오염수처럼 바다로 흘려보내버릴 수도 없으니까요.

화장장은 도쿄도 넘쳐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몸도 너덜너덜 상태입니다.

 

가와시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것도 상정 외가 되어 있을까나?

(고쳐 생각하여 활기를 되찾은 듯이)

아니 아니, 이것이 후쿠시마의 본래 베이스야.

그러니까 국내 제일의 희망동 건설 투자니까 말이야.

실로 후쿠시마의 심볼 희망동, 현립의대의 환자 증가는 베이스야.

상정 안에 있어, 스즈키군.

 

(스즈키는 끄덕거리지만 가와시타에게서 얼굴을 돌려 창 밖 희망동을 보면서)

스즈키   아이고… (독백)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후쿠시마 본래의 베이스라니? 환자증가가 부흥의 상징?

그럼 몸 너덜너덜도 부흥의 상징이라 할 수 있어?

무엇을 위해 의사가 되었는지 모르겠어. 정년까지 어떻게든…

 

<제3막>

다츠오는 갑상선암을 작년 12월에 수술하고 반년이 지났다.

그는 6년 반, 매월 25일 발행하는 ‘팜히로노’를 배포하려고 5백부를 경트럭에 싣고 나선다.

 

다츠오  (운전을 하면서 독백)

그 때는 이재민이 될 줄 생각도 못했지.

해안 사람들이 체육관에 왔기에 친구나 지인을 만날지 모른다 싶어 갔었다.

그런데 2500명이 복작복작. 어디에 누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아 큰일이구나 싶어 돌아왔다.

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을까 해서 여러 명과 상담하고 지원 콘서트를 준비했다.

3월에 새로운 뉴스를 담은 신문을 배포하기 위해 시내 23개소 병원을 두 번 순례하고,

출연자를 변경하고 조정하느라 영산과 니혼마츠에도 갔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걸어서 돌아다닌 오오나미나 와타리는 가장 선량이 높은 지역이었다.

그 때의 초기피폭 이외에 짐작 가는 게 없다.

 

나레이터

고원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는 가토 상에게 간다.

가토 상은 일찍부터 ‘팜히로노’를 감탄하며 읽어주었다.

언제나 웃고 있는 가토 상. 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다츠오  안녕하세요. 날씨 좋지요. 어때요, 몸 상태는?

 

가토  아뇨, 늘 그래요. 오랜만에 왔으니 차 마시고 갈래요?

 

다츠오  하던 일 멈춰서 어떡해요?

 

가토  아녀요. 쉬엄쉬엄 하지 않으면 몸이 못 견뎌요.

그런데 수술은 힘들지 않았어요? 나도 13시간 수술했어요.

‘나중에는 듣는 약이 없으니까’라고 의사가 그러더만요.

 

다츠오   (깜짝 놀란 목소리로)

옛?, 13시간이었어요? 잘 견디셨네요.

저는 4시간이었어요. 3시간 예정이었던게 기도 뒤에 갑상선이 붙어있어서 그걸 떼느라고 1시간 오버했다고 하대요.

비디오 찍은 걸 보여주던데, 목을 자르는 수술을 보고 스스로도 오싹하지 않았어요?

성대 반회신경도 있고, 동맥 등 혈관, 신경 등이 뻗어 있는 곳에서 수술하니까요.

선생도 나도 목숨을 걸고 수술했구나 곰곰이 생각했어요.

 

가토   정말 그래요. …13시간 수술이라니. 의사도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당신도 피곤한지 모르지만 나도 피곤하다’고 말했으니까.

 

다츠오   의사도 생명과 대면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의사를 존경해왔다.

간호원도 ICU 침대에서 보고 발소리를 들었지만 1초도 허투루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조금 사이를 두고)

‘왜 의과대를 비판하는가’라며 비난 받아왔지만, 의학은 분명 생명을 대하는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

존경하고 있는 만큼‘차별당하니까 말하지마’라거나 ‘방사능 영향이 아니다’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와 도쿄전력으로 기울어 있고, 사실과도 다르다.

현민인 환자의 이익에 반하고 환자 인권을 억압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

의사한테 말하지 못하는 약한 입장의 환자에게 용납할 수 없었어.

의대 기본이념에도 반하고 있고 말이야.

국가의 개입, 나가사키대 등에서 파견교수가 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

그리고 문제는 그 일의 실태야.

야근 간호원과도 말했지만 ‘힘든 일을 알아줘서 고맙다고 했지.

야근도 심야근무도 8시간 노동, 국철 때 있었던 16시간 근무가 지금도 의대에 있어서 깜짝 놀랐어.

몇 십년이나 예전 그대로로 바뀐 게 없다고 생각해.

이것도 또 생명을 맡는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비인간적 노동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나는 국철에 입사하고 얼마 안 있어 16시간 야근 노동은 소나 말보다도 심한 취급이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차를 타고 잘 때도 있었어. 지금 생각하면 오싹해져.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여기서 빠져나가자, 빠져나가자 생각했었지, 그 때는.

그런데 민상씨는 좋아졌다고 말했어. 약이 들었던가봐.

 

가토   (내 일처럼 기뻐하며)

와, 그거 다행이네.

민상씨는 저녁 때 의대 접수홀에서 우연히 만나 ‘야, 폐에 전이되어버렸어’라고 했지만.

좋아진 모양이네. 그거 잘 됐네. 조만간 다녀와야겠네.

 

나레이터

민상은 재작년 다츠오가 13밀리 결절이 발견되어 경과관찰 진단을 받을 무렵 검은콩요법이라는 민간요법을 계속하고 있었다.

가토씨 얘기를 듣고 다음 해 연말에 폐로 전이했다고 다츠오는 생각했다.

 

(민상을 돌아본다. 조금 사이를 띄운다)

 

가토   민상은 검은콩과 효능게재 신문기사를 가져와서 말이야.

‘이거 암에 들으니까’라면서 일부러 가져와 줬어. 나도 남이 좋다는 것이라면 뭐든 해봤어.

당장 북해도에서 킬로에 5백엔 하는 검은콩을 사서 시작했다.

지금은 인근의 버섯엑기스로 암억제에 듣는 놈을 마시고 있지만.

 

다츠오   천자세포진 검사 때 젊은 의사가 ‘유두암은 얌전한 암이니까 평생 모른 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라고 설명을 들었다.

일을 하는 사람이나 가정에서 바빠서 쩔쩔매는 분이라면 수술을 하지 않아도 좋다지만…

수술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임파절 전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임파절에서 폐 등으로 전이할 가능성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럴 일은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더만요.

‘그럼 수술해 주세요’라고 바로 결단했다.

수술을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몇 년간 몇 명이나 너무 늦어서 죽은 사람을 봐왔기 때문이야.

 

나레이터

다츠오는 민상씨가 드디어 1년 이내의 여명餘命이라고 항암제 요법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츠오는 2014년 10월 공동진료소 검진에서 13밀리 결절이 발견되어 경과관찰했다.

그러나 그 1년 반 후, 같은 검사기사에게 같은 크기인데 천자세포진 진단을 받았다.

무엇이 다른지 물었다. ‘그것은 얼굴이 달라요’라고 했다.

다시 1년여 동안 변화하여 진행된 ‘얌전한 유두암’의 방사선 노출하의 통상과 다른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츠오 아내   남편이 갑상선암이라고 알았을 때는 빨리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부터 결절이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쁜 곳이 있으면 제거하면 된다고 빨리 알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것은 안이한 환상이었습니다.

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거 아닌가, 수면 부족은 아닌가, 병과 싸울 체력은 있을까…

사이로글로브린이 비싸졌을 때는 재발 걱정으로 밤에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남편은 71세입니다.

남편을 생각할 때 갑상선암에 걸린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느긋할 시간은 있을까. 미래가 보일까, 그리고 아이들이 견뎌내야만 하는 긴 세월을 생각하고 맙니다.

앞으로 몇 명의 아이들이 갑상선암으로 진단받을지 우리집 손주들은 어떨지.

이제 이런 아이들은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