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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시 료지 선생님과의 인터뷰 2

<오코시 료지 선생님과의 인터뷰 2>

- 2017년 8월 소식지 게재.  글:김미정 운영위원장

 

2월부터 진행된 오코시 료지 선생님과의 이메일 인터뷰의 두 번째 결과물을 8월 소식지에 싣습니다. 4월 소식지에서도 소개해 드렸지만 오코시 료지 선생님은 후쿠시마의 증언자로 한국에 와서 발언하였고, 후쿠시마에서는 2011년 2월 설립된 NPO Farm 히로노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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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인터뷰2 질문

1. 선생님이 활동하고 계신 ‘NPO Farm 히로노’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2. 선생님이 퇴직 후 2년 동안 장애자 취로 지원사업을 하신 후, 방향성의 차이가 있어 새로 이 단체를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활동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3. 사고 후 방사능 피폭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Farm 히로노’에서는 어떻게 소개하는지요?

4. 후쿠시마현 병원과 진료소는 현재 충분히 가동되고 있는지요?

5. 1월에 한국에 방문하셔서 국회에서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의 감상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6. 사고 전 후쿠시마에 대한 추억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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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이 활동하고 계신 ‘NPO Farm 히로노’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2011년 2월 설립된 우리 ‘ Farm 히로노’는 정신장애자들의 재활을 위해 농작업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러나 3.11 지진재해와 동시에 핵발전소 사고로 모든 선택지를 빼앗겨버렸습니다. 이 말은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주요 사업인 농작업이 정신장애자에에게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신장애자 특유의 방사능에 대한 과잉 불안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농지가 약 50만Bq/㎡ 상태이고, 이것은 보통 사람들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고 전까지는 4만Bq/㎡이 방사선관리구역이고, 법 규정상 임산부와 아동의 출입이 금지되고 들어갈 필요가 있는 사람은 건강진단, 피폭량 측정 등 규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비상사태 선언 아래 있고, 통상법령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궁리 끝에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 이 때 모든 사업을 폐기해야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마도오리(도로명)에서 온 피난자가 근처에 있고(약 2천명), 또 이 오염된 농지를 두고 그냥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이 땅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우리 목표가 아닐까, 등의 논의와 동시에 체르노빌 교훈을 공부하였습니다.

 

2. 유채 재배 시도와 실패

체르노빌 교훈의 하나는 우크라이나 나로지치 지역은 일본의 지원으로 토양이 오염된 상태서 유채 재배 생산을 재개하여 오염된 토양이라도 유채 기름에는 세슘이 흡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본의 지원단체는 ‘NPO 체르노빌구원/중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가와다 마사하루씨 지도를 받아 ⓵유채 재배를 축으로 오염농지의 제염과 유채재배 생산활동을 계획 ⓶농산물 측정을 통해 주민의 내부피폭을 피하는 운동 ⓷지역주민이 방사능 피폭에 대해 전혀 바르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도 방사능을 배워 선전하고 교육해 가는 활동 ⓸장애자 지원은 본격적이진 않지만 수시로 접수 받아 함께 일하면서 실천하자고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유채 사업은 3년 정도 계속했지만 농업협동조합 방향은 도쿄대학 농학부 지원에서 통상 농업재개로 전환하여 쌀 생산, 과수 생산, 축산과 낙농 등을 재개했습니다. 유채 재배는 합의를 얻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농업협동조합의 협력도 얻지 못해 확산시키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 활동을 통해 후쿠시마 농업이 결코 밝지 않고 문제를 미래로 넘기게 될 것임을 오염 실태와 제염의 행방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도쿄대학 농학부 주장의 잘못에 맞서 토양을 6년 동안 계속 측정해왔습니다. 도쿄 농학부는 토양 속 세슘의 흡수과정에 대해 a.세슘은 토양에 붙어서 강하하지 않는다. b.표토제거는 소중한 흙을 깎아내는 것이고, 또 국가 비용은 20조엔이나 들어갈 것이라며, 표토제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토양 속 세슘은 긴 시간 동안 침하되어 지금 당장 토양에서 흡수되지 않는다고 해도 몇 년 후에는 침하되어 뿌리에서 흡수가 시작되리라는 전망하므로 과수농가에의 지원은 a. 오염표토 제거를 선택해야 한다, b. 농민의 피폭과 과수의 과일도 흡수를 피하도록 할 것 등입니다.

체르노빌의 교훈을 공부한 결과 다음의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⓵‘토양 속 세슘 강하 없음’ 설에 대해, 체르노빌에서는 6~7년 째에 과목에서 흡수가 급격하게 시작되어, 흡수되고 있습니다. 흙에 이온결합하고 있는 세슘은 암모늄 이온으로 인해 유리되어, 수용화되어 하강하고 이윽고 뿌리가 흡수하는 것일 것으로 실제로 농업협동조합은 암모니아계 비료 시비를 권해 과수를 중심으로 지금까지처럼 농업경영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세슘은 암모니아에 의한 유리’의 우리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시해온 도쿄대학 농학부의 설에 따라 추진되어온 표토제거 회피시책에 따라 결과적으로 하강은 진행되어 현재 15~20cm까지 진행되어 뿌리 흡수도 임박했습니다.

 

4. 후쿠시마현 병원과 진료소는 현재 충분히 가동되고 있습니까?

4-A. 소아갑상선암의 속출은 ‘새로운 입소문 피해’?

시장에서는 후쿠시마산 쌀, 과수과실, 채소 등 모든 것에서 10몇% 싼값으로 거래되고 쌀 등은 가축 사료가 되거나 국내산으로만 산지가 표시되는 외식산업용 쌀로써 통상보다 불리한 가격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입소문 피해’라고 하여, 국가와 도쿄전력은 보상대상에서 제외시키려 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입소문 피해대책’이라 칭하며 온갖 방사능 피해를 공표하는 자들을 ‘박멸’시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문제 쟁점을 ‘입소문 피해’로 바꿔치기 하여 필사적으로 핵발전 비판세력과 그 주장을 누르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대통령 짝입니다.

이 쟁점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아갑상선암입니다. 작년 6월 현소아과의사회는 ‘(소아갑상선암 속출은) 새로운 입소문을 낳을 우려가 있다’며 갑상선 검사 축소를 현에 제언했습니다. 작년 9월 후쿠시마국제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축소 방향을 현에 제언했습니다.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실시된 갑상선 검사가 ‘새로운 입소문’이라며 사회적으로 말살시키려는 것입니다.

우리 운동의 축도 필연적으로 아이들의 건강 피해, 아니 모든 피해자의 건강문제에 대응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아 활동해 왔습니다. 축소론, 방사능 부정설의 기만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역학적 연구를 소개하고 홍보에 노력함과 동시에 무엇보다 갑상선에 걸린 아이들, 어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반영시켜야 할 운동에 중점을 두어 왔습니다.

 

4-B. 이환자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할 진료행위가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있는 병원

저는 사고 발생 1년 째 부터 몸의 컨디션이 점점 나빠졌습니다. 저는 자진 피폭 이후, 5년 동안 현저한 컨디션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1년(130에서 160대의) 고혈압으로, 11년 6월에는 과거에 없던 급성 설사, 12년(6월) 1주일 이상의 하혈, 13년(10월경) 20분 이상의 가슴 통증, (13년~15년)3~4개월마다 반복되는 통풍, 14년 2월(30몇년 만) 급성 비염, 같은 해 10월 갑상선 좌엽 결절 경과 관찰로 진행. 이 동안 적어도 일곱 군데의 병원과 의원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 중에서 14년 2월의 급성 비염 재발은 30몇 년 만의 일인데 저는 방사능 영향을 강하게 의심합니다. 의사한테 방사능 영향을 물었습니다. 의사는 바로 ‘내 팔을 보시오. 뭔가 염증이 있는가요? 만약 방사능 영향이 있다고 하면 염증이 생겼겠지요’ 라며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의원은 CT도 갖춰놓고 설명서에는 0.3mSv 피폭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저는 지금도 계속 피폭을 당하고 있음과 지금까지 몇 번인가 비염을 치료했지만 CT 검사를 하지 않고도 끝냈기에 CT검사는 하지 않겠다며 거부했습니다. 의사는 ‘그러면 내부를 알 수 없어 치료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의사는 CT 촬영 없이 진찰하여 ‘비염’이라고 진단하고 치료했습니다. 의대에서 나중에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의대에서는 CT를 사용하지 않고 내시경으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CT 없이 ‘진찰할 수 없다’는 의원은 CT 사용을 위한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의사는 이미 방사능 영향은 없다는 의사회의 의사를 통일시켜 환자를 진단할 때 관찰이나 문진, 검사 없이 진단하기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의대에서 갑상선암을 진찰할 때도 의사는 처음부터 문진도 안하고 ‘이 갑상선암은 방사능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언에 가깝게 단정적으로 말하며, 인폼드 컨센트 없는 일방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느 의원, 병원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한테 일정한 불신을 품을 수밖에 없고, 갑상선암 등은 진료할 수 있는 의원과 의사가 한정된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진료를 받는 실정입니다. 물론 운이 좋은 사람들은 도쿄나 오사카 등의 전문병원을 선택하고 있다고 합니다.

 

5. 1월에 한국을 방문하셔서 국회에서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의 감상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국제심포지움에서 갑상선암 실태를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반대로 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께 알기 쉽게 갑상선암 실태를 보고할 수 없었던 것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전에 보고했던 제 얘기가 번역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급거 참가를 결정하게 되어 잘 생각하지 못한 채 쓴 보고였는데 그래도 후쿠시마 실태를 여러분께 알리게 되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래서 보고를 더 간단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국제심포지움에서는 고리원전 주변 역학조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후쿠시마에서는 한국의 갑상선 검사 과잉 진단문제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자료로써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에코 검사를 하면 어디라도 이같이 높은 확률로 갑상선암이 발견된다. 그러니까 후쿠시마도 마찬가지 현상이다’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은 한국에도 많이 존재하는 갑상선암 이환자와 직접 얘기함으로써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대화 속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첫째 목적은 백도명 교수의 역학적 보고에서 16년간 추적조사가 옳은 것, 또 여러 바이어스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신중한 보고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갑상선 검사와 결과를 가지고 지금까지 없던 갑상선암 상승 원인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둘째 목적은 심포지움에서 발언한 갑상선암 여성 환자의 발언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과연 한국 분이구나 감동했습니다. 후쿠시마에서는 아이의 갑상선암 발언도, 어른의 갑상선암 환자도 모두 뒤에서 할뿐, 공공연히 얘기하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은 서울시가 전국민 20% 이상이 집중된 도시인데 따라서 주변에 핵발전소가 존재했던 시골 사람들이 도시로 나와 갑상선암이 발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의 의견인 걸로 아는데 뜻밖에도 그 지적은 맞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역학적으로는 지리적, 시간적 공간과 노출의 관련은 큰 바이어스도 되고 영향을 주고 있음을 그 분은 지적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광주시 반핵운동의 지면에서 그 발언을 한 분이 통신원으로써 협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기뻤습니다.

 

6. 사고 전 후쿠시마에 대한 추억을 듣고 싶습니다.

많이 많이 남겨두고 싶은 후쿠시마의 추억. 이제 돌아갈 수 없는 후쿠시마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처음입니다. 이 같은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은…

제가 태어난 곳은 후쿠시마제1원전이 있는 오쿠마정 인근의 가와우치무라입니다. 후타바 지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후타바고교도 모교인데 핵발전소에서 4~5킬로 지점에 있습니다. 당시에는 핵발전소가 없어서 체육시간에는 비행장터까지 뛰어갔습니다. 지금은 휴교여서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고교가 되었습니다.

원래 산간 마을이었기에 자연과 함께 성장했지요. 강과 산은 정말 좋은 놀이터였고요. 곤들매기나 어린 새를 잡아 그 자리에서 구워먹기도 하고 곤들매기나 황어 같은 물고기는 가족의 식량과 단백질원이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버섯을 채취했지요. 송이나 능이버섯, 머루, 으름, 밤 등 산에서 주는 선물이 넘치던 나날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능이를 잘 땄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혼자 나서서 늘 가던 성(늘 나는 자리에서 버섯이 난다)에 가서 수확만 할 뿐이니 큰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모르는 곳이라 엄청 우쭐대며 작지만 큰 공적을 세우곤 했습니다.

후쿠시마시에 와서도 온천이 풍부해 좋았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온천수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도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온천이 있고 20~30분 이내 거리에는 얼마든지 온천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아이들과 놀면서 후쿠시마시를 흐르는 아라카와 강 상류 강변에서 온천이 솟아오르는 것을 발견해 강변에 온천을 만든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을 날라 강 흐름의 졸졸거림을 들으면서 천연 온천에 만족했습니다. 강 돌을 베게 삼고, 불을 붙여 곤들매기를 구워 맥주를 마시고 휴일을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후쿠시마의 추억은 무엇 보다 과일나무 왕국인 것입니다. 과일이 풍부할 뿐 아니라 과일은 무엇보다 막 따낸 것이 맛있습니다. 특히 복숭아는 각별합니다. 복숭아 배 사과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과일도 변해 갑니다. 사이사이 체리, 서양배, 수박, 감 등등.

이런 과일왕국도 지금은 옛 얘기. 하품 취급으로 전락되어 쌀은 지금도 맛있는데 사료 쌀이나 업무용 쌀로 등급이 떨어졌습니다. 과일도 산지 불명의 싸구려로 시장에서 돌고, 언젠가 저는 수퍼 염가 코너에서 후쿠시마산 채소가 땡처리되고 있는 것을 보고 울면서 돌아왔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아이들은 물놀이나 동산을 뛰어다니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너무나 분합니다. 다시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자연도 누가 빼앗았단 말인가? 고향은 제 추억과 반대로 변해버렸습니다, 맨발로 흙 위를 걷는 기분 좋음, 냇가 물을 홀짝홀짝 잘 마시던 그 한 때를 빼앗아버린 자 누구냐, 라며 큰소리로 부르짖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