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식지부터 3회에 걸쳐 지난 5월 30일과 31일 양일간 있었던 ‘비핵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포럼’에서 반핵의사회가 발표한 내용을 싣습니다.
국제포럼에서는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다루었고
반핵의사회는 인의협과 함께 참가하여 ▲핵의 반인도적, 반환경적 영향을 주제를 맡았습니다.
3가지 소주제 (핵발전소 노동자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일본산 수산물 수입에 따른 피폭 가능성 관리기준과 한국내 원자력발전소 방사능폐기물 방출에 따른 주변주민피폭관리기준의 비교, 한국의보건의료운동과 반전평화운동) 중
첫 번째 발표를 맡은 박찬호 운영위원은 “현재 20대에 핵발전소에 일하던 노동자가 혈액암이 발생하여 산재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5년에 산재요양신청을 냈으나 불승인 받아 2심 진행중이다.”면서 이 발표를 준비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였으며 이후 진행될 소송에 관심과 연대를 부탁하였습니다.
이번호에서는 방사선업무관련 직업병암 인정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기구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ICRP)의 역사와 한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ICRP의 역사와 주요 권고 사항-박찬호 선생님. 2019.5.30. 한일포럼 발표자료 내려받기>
ICRP의 역사와 주요 권고 사항
(필자 주 ; ICRP 권고에 대한 평가는 현재로서는 일본의 나카가와 야쓰오의 [방사선피폭의 역사]가 가장 신뢰할 만한 자료이다.(한국어로 곧 출판될 예정이다) 나카가와는 미국에서 머물면서 ICRP에 참여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또 미국정부로부터 정보공개한 여러 관련 문서를 집약하여 가장 종합적인 ICRP의 역사를 비롯한 방사선 관련 국제 동향을 분석했다. 이 글은 나카가와의 저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ㅇ 설립과정과 ICRP의 초기
ICRP의 전신은 1928년에 설립한 국제X선•라듐방호위원회(IXRPC ; the International X-ray and Radium Protection Committee)이다. IXRPC는 노동자들의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직업병 방지를 주요 목적으로 탄생했다. 설립 계기는 1920년대 방사선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가 세계적으로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X선 장치와 라듐의 이용, 또 의학적 진단 • 치료 장비를 급속히 보급한 결과 방사선과 의사나 기사, 또 방사선을 쪼인 환자들 사이에서 방사선의 급성증상과 만성증상, 게다가 치명적인 암이 무수히 발생했다. 라듐의 경우에는 시계의 숫자판에 야광도료를 칠하는 작업에 종사했던 미국 여성노동자 중에, 1924년경부터 골육종과 재생불량성 빈혈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속출했다. 미국 노동부와 공중위생국이 전국적 조사를 진행해야만 할 만큼 큰 사회문제로 대두하였다. 즉 IXRPC는 일종의 피폭방호를 위한 과학자들의 학술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핵 찬성파는 3국(미국, 영국, 캐나다) 협의과정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을 중심으로 IXRPC를 새롭게 개편하고, 조직의 성격과 목적도 크게 변질시켰다. 당초 방사선방호를 위해 설립한 조직을 미국이 주도하는 핵무기와 핵 발전 찬성조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1950년 이후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로 부르고 있으며, 자매위원회로서 국제방사선단위•측정위원회가 있다. 이들은 일반권고와 성명서라는 두 가지 형태의 행위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권고는 “Publication”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고유 번호를 붙이고 있다. 첫 일반권고는(즉 Publication 1)1958년 9월에 승인하고, 1959년에 발표하였으며, 이후 일반권고는 총 5회(1964년 Publication 6, 1966년 Publication 9, 1977년 Publication 26, 1990년 Publication 60, 2007년 Publication 103)가 있었다. ICRP는 1990년 [Publication 60]에서 자신들의 일반권고 목적에 대해 언급하기를 “이용 가능한 자료의 가장 비관적인 해석이나, 가장 낙관적인 해석도 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피폭의 결과가 과소평가 되지 않도록 추정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신경써왔다”고 밝히고, “피폭의 결과와 의미에 걸맞는 추정에는 폭넓은 학문분야의 과학적 판단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판단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ICRP는 전리방사선과 관련한 “과학적 평가”와 함께 “사회 경제적 판단”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오늘날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국가에서는 대체로 ICRP의 권고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소위 “사회 경제적 판단”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가 ICRP 논의의 핵심사항이다.
ㅇ. 1950년대와 1958년 권고(Publication 1) 평가
ICRP는 1950년 설립당시에는 방사선에 리스크가 있다는 주장 자체에 대해 저항했었다. 그러나 ICRP가 1958년 권고에서 내걸었던 방사선방호의 기본적 관점은 “리스크-베네피트론”이었다. ICRP는 핵발전소 개발 등으로 새롭게 추가된 방사선 피폭 리스크는 “핵의 실제적인 응용을 확대하여 발생하는 이익을 고려한다면 피폭을 허용하고 정당화돼도 좋다.”면서 전면적으로 리스크를 인정한다는 견해를 채택했다. 이런 철학을 배경으로 허용선량 정책을 도입하였다. 허용선량은 “개인이나 집단 전반에 허용할 수 있는 일정한 위험을 동반하는”선량으로 정의했다. 유념할 것은 허용선량을 “안전선량”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일정한 위험을 수반”하는 선량이지만, 핵 개발 추진을 위해선 약간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선량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평균적인 인간”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방호의 측면에서 가장 중시할 수밖에 없는 태아나 아동을 포기하는 사상인 셈이다. 이리하여 연간 한도는 단적으로 표현하면 “평균적인 인간”인 성인 피폭 노동자는 5렘(50밀리시버트) 일반인은 0.5렘(5밀리시버트)이었지만, 피폭제한 자체는 “신체장애를 방지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허용선량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허용선량 이전의 선량정책이었던 “내용(耐用)선량”과 비교하는 것이 좋다. 내용선량이라는 개념은 어떤 ‘경계선량’이하라면 안전하다는 가정을 포함했다. 그러나 방사선으로 인한 돌연변이에는 그와 같은 경계선이 될 선량이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내용선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지적이 항상 ICRP에게는 눈의 가시 같았다. 허용선량은 부담스런 내용선량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장해발생 가능성을 인정하는 선량기준인 셈이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방사선 피폭의 일반적 원칙을 수정하였다. 1950년에는 “가능한 한 최저 수준까지(to the lowest possible level)”라는 원칙은, 1958년 권고에서는 “실행 가능한 한 낮게(as low as practiable, ALAP)”로 대폭 완화했다.
2-2. 6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설립이후 소위 ‘리스크(유해성) 수용론’과 ‘허용선량’에 머물러 있던 ICRP는 1950년대~6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반핵운동의 확산을 맞이한다. 아울러 세계의 여러 과학자들은 방사선의 유해성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ICRP는 이런 흐름에 대해 논리적 빈곤성을 면치 못했으며 떠밀리듯 몇 가지 쟁점사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방사선과 암이나 백혈병의 상관관계에 대한 마지못한 인정, 2) 문턱선량은 없다는 주장에 대한 인정이 그것이다. 수세에 몰린 ICRP를 비롯한 핵 개발 세력은 민간분야의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BEAR위원회를 만들고 앞에서 언급했던 소위 ‘리스크-베네피트론’을 개발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ICRP의 핵심 철학이었던 이런 논리마저 유지할 수 없었다. 리스크를 수용해야 하는 사람과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왜 달라야 하는 가에 대한 문제제기에 답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핵 개발 세력은 1973년 새로운 알라라(ALARA ;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원칙 발표와 함께 ‘리스크 – 베네피트론’을 ‘코스트 – 베네피트론’으로 변경하였다. ‘리스크 – 베네피트론’은 방사선으로 인한 ‘리스크’가 있다고 해도 핵 개발로 인한 ‘베네피트’가 더 크기 때문에 리스크를 수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코스트 – 베네피트론’은 핵개발로 인한 방사선 리스크를 단순히 ‘코스트’로만 다루겠다는 의미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비용’으로만 보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때부터 ICRP는 방사선 피폭자의 질병발생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낮다는 식의 논리를 제기한다. ‘리스크’라는 말도 없애고, 핵발전소의 운영비용도 더 낮추자는 의도가 배경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맨 처음 “가능한 최저수준까지 낮게(to the lowest possible level)”라는 ICRP의 원칙은 “가능한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서 낮게(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로 변경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7년 ICRP는 새로운 권고내용을 발표하였다. 1977년의 권고는 향후 핵개발을 손쉽게 추진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방사선 피폭 방호를 관철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허용선량 개념을 포기하고 ‘선량당량’(dose equivalent = 등가선량)을 사용할 것, 가장 민감한 특정 장기에 대한 선량으로 피폭을 제한하려는 ‘결정 장기’라는 종래의 견해를 포기할 것, 3개월 3렘(30밀리시버트)의 제한량 및 5렘(50밀리시버트) × (연령 ― 18세)의 연령 공식을 포기하고 전신(全身) 5렘(50밀리시버트)로 할 것, 공중 피폭에 관해서는 알라라(ALALA)원칙을 기초로 대폭 개정할 것.”등이다. 이상의 ICRP 권고가 갖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방사선 피폭방호를 비용관점으로 변경
2) 방사선 피폭 인정이나 피폭 수준에 대해선 기존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조사를 그대로 인정
3) 정당화, 최적화, 선량한도라는 3대 체계를 강요.
4) 피폭 기준의 완화.(대량 피폭 인정, 12개월 피폭기준을 ‘연간’이라는 표현으로 변경, 건강진단 횟수와 항목을 대폭 축소)
5) 허용선량 개념대신 유효선량(effective dose)이라는 개념을 도입
6) 방사선 피폭을 여러 위험요소중의 하나로만 평가(가중 개념의 외면)
7) 성인만을 기준으로 선량을 설정
위 내용 중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항으로서 현재 한국 등 세계의 핵발전소 추진 국가들이 선량개념으로 제한하는 소위 “유효선량”에 대한 문제이다. 유효선량은 당초의 허용선량으로 계산했을 때보다 훨씬 줄어든다. 유효선량은 예컨대 망간의 경우 13배 과소평가, 스트론튬의 경우 11.5배 과소평가 한다. 이는 ICRP가 비용 때문에 피폭선량을 실제적으로 더 낮추기 어렵다고 보고 형식적이나마 피폭선량을 줄이기 위한 과학적 눈속임에 불과하다. 핵발전소 개발을 위해 ICRP는 처음으로 속임수를 동원했다.
이후 ICRP는 1) 미국에서 중성자탄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조사의 문제점과 2) 핸포드 핵시설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사망률을 조사한 맨큐소 등의 연구 발표, 3) 1986년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등으로 인하여 기존 권고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결국 1990년 ICRP는 새로운 권고를 발표하였다.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서 노동자의 연간 선량한도를 5렘(50밀리 시버트)에 그대로 놔두고, 5년간 10렘(100밀리 시버트)의 누적 선량한도를 병행하는 점에 있다. 이것은 1년과 5년 합산한 피폭선량 제한 값 설정을 목표로 하는 이중기준의 적용이다. 핵발전소 피폭노동자의 대부분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사회적 약자임을 감안할 때 상당수가 1~2년, 길어봤자 몇 년 일을 한 후에 핵발전소를 떠난다. 이들 대부분이 방사능피폭으로 건강을 잃기 때문이다. 이중기준의 적용은 핵개발 세력이 핵발전소 하청 노동자를 일회용품으로 사용하고 버리겠다는 국제적인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하청 피폭노동자에게 누적 선량 기준은 아무 의미가 없다. 만일 하청 노동자가 장기간 피폭 노동에 종사하게 되면, 그런 경우의 누적 선량 기준이란 피폭선량이 제한 값에 도달했을 때 해고시켜 버린다는 점을 의미한다.
ICRP의 2007년 권고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해당하는 긴급’, 사고 수습과정인 ‘현존’과 평상시의 상황인 ‘계획’의 세 가지 범주로 구별한 피폭관리가 제일 중요한 특징이다. 체르노빌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어 핵 개발 세력이 사고에서 평상시로 이행하는 동안에는 ‘고선량 • 대량피폭’을 전제로 ‘참고레벨’(기준선량)을 설정하여 피폭을 관리한다. 말하자면 ‘긴급’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500~1000밀리 시버트’라는 고선량 상태를 합리화 해준 것이며, ‘현존’에서는 “평상시보다 피폭 선량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일정하게 장기간 지속중인 선량”을 합리화 한 것이다. 즉 주민들은 ‘1~20밀리 시버트/년’을 기준으로 오염지역에서 계속해서 생활할 수 있다고 제시한 것이다. 사고 때문에 발생한 오염지역의 고선량 피폭을 합리화하면서 생명은 경시하고 비용은 줄이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럴 경우의 가장 큰 문제는 어린이나 임산부에 대한 사실상의 포기, 특별히 복구 작업에 참여하는 하청노동자들의 포기정책이라는 점에 있다. ICRP는 “대표적 인물”의 피폭선량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사회적 건강 취약계층을 일체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 ICRP가 제시하는 참고레벨 20밀리시버트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수치에 불과하다. ICRP의 2007년 권고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에서 현실화했다. ICRP의 2007년 보고서에 대해 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ECRR Eureopean Commission on Radiological Risk)의 평가는 “폐지”외엔 대안이 없었다.
“2007 ICRP 연구보고서에 대한 간략한 검토에 의하면, 이 모델이 1990년에 발표된 이후 본질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이 모델의 오류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와 주장들이 전체적으로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ICRP는 전리방사선 피폭에 대한 동일한 리스크계수를 계속 지지하고 있으며, 이 모델은 여전히 환경에 방출되는 한계량을 정하는 기초이다. ICRP 2007 모델은 아래와 같은 증거를 논의하지 않는다: 이 모델은 선택적이고, 편협하다. 그리고 이 장에서 개진한 과학의 철학적 요구사항을 전혀 수용하지도 않는다. 부록에 있는 레스보스 선언문에서 요구하듯이, ICRP 모델은 이제 폐기되어야만 한다.”
ㅇ. ICRP 일반권고의 특징 요약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ICRP의 일반권고 내용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반핵운동의 세계적 고양이나 방사선의 유해성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핵 산업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기>라고 규정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