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핵발전소 시한폭탄 23기, 이제는 폭탄을 해체할 때! 현장 삼척에서 서울까지, 탈핵 염원 담은 400㎞ 도보 순례 이재호 기자

핵발전소 시한폭탄 23기, 이제는 폭탄을 해체할 때!

[현장] 삼척에서 서울까지, 탈핵 염원 담은 400㎞ 도보 순례

이재호 기자

 

“당장 핵발전소 가동을 멈추라는 게 아니다. 신규 핵발전소를 짓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자.”

삼척에서 서울까지 총 400킬로미터의 ‘탈핵 희망 도보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강원대학교 성원기 교수는 순례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성 교수는 “순례단이 흘렸던 땀과 눈물과 기도를 모아서 박근혜 정부에 요구한다. 새로운 핵발전소를 짓는 것은 우리의 장래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신규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말라”고 호소했다.

탈핵 희망 도보 순례단이 주최하고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 행동이 주관한 ‘탈핵 희망 도보 순례단 서울 도착 기자 회견’이 7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8월 15일 삼척에서 시작된 이번 순례는 이날 기자 회견으로 마무리됐다. 이 자리에는 신규 핵발전소 예정지인 삼척에 거주하는 시민 40여 명을 포함해 1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 지난 8월 15일 삼척을 출발해 7일 서울에 도착한 탈핵 희망 도보 순례단 및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재호)

순례단 단장 성원기 교수는 이날 기자 회견에서 “핵발전소가 단지 지역 주민만의 문제였다면 깃발을 들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핵발전에 의해 생성된 폐기물은 전 세계 모든 생명에 위협이 되는 물질”이라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이어 “경작지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의당 김제남 국회의원은 “올해 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을 다시 짜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14일 정부는 새로운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삼척과 영덕을 신규 핵발전소 예정 부지로 확정 고시했다”며 “예정 부지를 고시해 놓고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을 짜는 것은 옳지 않다. 고시를 철회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순례단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일본에서 일어난 핵사고로 인해 우리 국민이 마음 편히 수산물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는 삼척, 영덕에 지정된 예정 구역 고시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재생 에너지, 중소기업 살리고 후손도 살리는 길

삼척에서 서울까지 400킬로미터의 탈핵 희망 도보 순례를 마친 성원기 교수는 “무사히 서울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그리고 함께 걸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며 “걸어오면서 바쳤던 정성과 마음, 기도, 땀방울 등이 핵 없는 세상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순례 기간 중 울진 신화리 마을회관에서 보낸 하룻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마을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전했다. 성 교수는 “신화리는 울진 원전에서 1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마을이다. 고압 철탑도 있고 고압선도 지나가고 있어 주민이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를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이주가 힘든 이유는 그곳에 들어와서 살 사람이 없고, 그러다 보니 주택 매매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마을 사람들이 정부에서 별다른 지원책이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면서 “한 집 건너 한 집이 암 환자라고 하더라. 울진 원전 근처 사람들의 건강이 다른 지역보다 나빠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처럼 (정부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전기료 몇 푼 싸게 해주고 끝날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 탈핵 희망 도보 순례단 단장 강원대학교 성원기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재호)

성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핵발전소를 줄여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방법으로 그는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 등 재생 가능 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생 에너지가 초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에 정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생 에너지 개발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 중소기업을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핵발전소와 화력 발전 등은 중앙 집중적인 생산 체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는 재생 에너지는 지역별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즉, 소규모로도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 중소기업을 살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재생 에너지로 예산을 투입하면서 핵발전소 가동을 하나씩 멈출 수 있다”며 “이러한 정책을 30년 이상 꾸준히 추진하면 결국엔 탈핵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런 에너지 발전 방식을 중소기업이 주도할 경우 중소기업도 살리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고 후손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탈핵의 그날까지 도보 순례 이어갈 것”

탈핵 희망 도보 순례단은 오는 10월 3일 영광 핵발전소로 향하는 또 한 번의 도보 순례를 시작한다. 지난 순례단 단장이었던 성원기 교수에 이어 수원대학교 이원영 교수가 도보 순례의 바통을 받는다. 이 교수는 “10월 3일 서울을 출발해 매주 금, 토, 일 도보 순례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탈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많은 분들이 순례에 함께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교수가 도보 순례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 6월, 성 교수가 부산 고리 핵발전소에서 도보 순례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였다. 그는 “지난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탈핵 운동을 하게 됐다. 성원기 교수가 탈핵 선언 1052명 중 한 명이었는데 부산에서 걷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진에서부터 합류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탈핵의 그날까지 도보 순례를 이어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2014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주기가 되는 날 고리 1호기 폐쇄를 목표로 궐기 대회를 열 예정”이라며 “그동안 도보 순례를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도보 순례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우리가 핵발전소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핵발전소가 전체 사용 전력의 30%다. 여기에 목맬 이유가 뭐가 있나”라고 반문한 뒤 “대안 에너지로 갈 수 있고 기술적으로도 가능한데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인 핵발전소를 감수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