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원전, 위험을 안고 산다

원전, 위험을 안고 산다

 

박철응 기자 hero@kyunghyang.com

 

ㆍ‘신경계’ 역할 케이블을 위조… 만약 탈 났다면 국가적 재앙
ㆍ방사능 유출 땐 수십만 피해

신고리 1~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원전의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는 원전 부품 성능 검증기관이 시험 조건과 결과를 일부 조작한 사건이다. 이처럼 단순한 조작도 원전에서는 엄청난 재앙을 부르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지난 28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위조 부품이 사용됐다고 발표한 제어케이블은 일종의 전선으로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 각종 안전장치들이 작동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신경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제품은 사고 발생을 가정한 고온과 고압 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예컨대 전력공급이 지진 등으로 차단될 경우 원자로 내부의 온도가 높아져 전선 피복이 열에 녹거나 압력으로 딱딱하게 굳어 파손될 수 있는 제품인 것이다.

원자로 내부의 온도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으면 200도까지 치솟고 압력은 평소의 3~4배까지 증가한다. 열을 낮추기 위한 비상 냉각펌프가 작동해야 하지만 제어케이블이 녹아내려 신호를 전달할 수 없어 냉각펌프는 무용지물이 된다. 온도를 낮추지 못하면 원자로 내의 물이 모두 증발하고 후쿠시마 원전처럼 노심이 녹아내릴 수 있다.

고온의 원자로 내에서 발생한 수소도 여과장치를 통해 걸러낸 뒤 외부로 내보내야 하지만 이 장치도 제어케이블이 불량일 경우 역할을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차폐문이 제어케이블이 불량일 경우 작동되지 않는다. 사고에 대비해 갖춰놓은 안전설비들이 대부분 불능상태에 빠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같은 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한빛(영광) 원전에 계전기퓨즈, 스위치 등 위조된 부품 수천개가 사용된 사실이 적발됐다. 이들 부품도 퓨즈 등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해 원전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말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원전 사고 피해 모의실험 결과를 보면 월성 원전 1호기에서 체르노빌 사고 정도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고 울산 지역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 2만명가량이 사망하고 70만3000명이 암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피해도 36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제어케이블 같은 안전설비는 평소에는 쓸 일이 없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먹통이 된다면 모든 안전장치를 무력화시킨다”면서 “시험 조건의 수치를 간단히 바꾸는 행위가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온다는 점을 원전 관계자들은 늘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