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친환경 원전 선진국 스웨덴서 핵폐기물 해법 찾는다

친환경 원전 선진국 스웨덴서 핵폐기물 해법 찾는다

연합뉴스| 기사입력 2013-05-27 05:11


CLAB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

“직접 대화 통한 주민 지지 확보와 투명한 정보 공개가 성공 요인”

(오스카샴<스웨덴>=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2011년 3월 11일 일본 열도를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

지진 발생 다음날 터진 후쿠시마 원전(原電) 사고는 일본 원전의 안전 신화를 뿌리째 무너뜨렸다. 일본은 물론 각국에서 ‘탈(脫)원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후쿠시마의 악몽’이 벌어진 지 불과 나흘 뒤인 2011년 3월 16일.

스웨덴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 회사인 SKB는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장이 들어설 부지로 포스마크를 선정하고 처분장 건설을 위한 인허가 신청서를 이날 스웨덴 정부에 제출했다. 1977년부터 영구 처분장 건설을 준비한지 30여년 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사이더 라우치 엔즈스트롬 SKB 부사장은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은 방사능의 농도에 따라 고준위 폐기물과 중·저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 사용후 핵연료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 방식에는 직접 처분(사용후 핵연료를 지하 깊은 곳에 영구 매장하는 것)과 재처리(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 등을 분리해 연료로 재활용하는 것)가 있다.

원전을 가동 중인 31개국 중 13개국은 직접 처분을, 10개국은 재처리를 선택했다.

스웨덴은 사용후 핵연료를 30-50년간 냉각한 뒤 지하 300-1천m의 깊은 땅 속에 영구 매장하는 직접 처분 방식을 채택한 대표적 국가다.

23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 우리나라는 직접 처분을 할지, 재처리를 할지 정책 결정을 유보한 상태.

23기의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는 연간 약 700t. 울진, 월성, 고리, 영광 등 4곳의 원전 단지 내에 1만2천629t(지난해말 기준)의 사용후 핵연료가 임시 저장돼 있다. 하지만 2016년부터는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가 될 것으로 예상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의 관리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다음달 중에 민간 자문기구인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공론화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한국여기자협회 프로그램으로 ‘원전 선진국’ 스웨덴을 찾았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차로 꼬박 4시간 30분을 달려 남부 오스카샴에 도착했다.

인구 2만2천의 소도시 오스카샴은 스웨덴 원전 산업의 ‘심장’이다.

스웨덴의 4개 원전 회사들이 공동 설립한 SKB는 이곳에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저장시설인 CLAB(Central Interim Storage for Spent Fuel)과 사용후 핵연료의 지하시험시설인 에스포 암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원전 10곳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는 연간 200t 남짓. 지금까지 발생한 사용후 핵연료는 1만2천t에 달한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내 저장소에서 약 1년간 저장됐다가 CLAB으로 옮겨져 30여년간 냉각 과정을 거친 뒤 영구 처분장이 건설되면 그곳에 영구 매장된다.

CLAB의 저장용량은 최대 1만t. 이곳에 반입되는 사용후 핵연료는 연간 300t으로, 현재 이곳의 저장수조에는 5천600t의 사용후 핵연료가 저장돼 있다.

SKB는 스웨덴 정부의 허가가 나오면 포스마크에 영구 처분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장을 건설한 국가는 없으며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만 처분장 부지를 확보한 상태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1979년 미국 TMI 원전사고로 원전의 안전성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자 스웨덴은 국민투표를 통해 당시 운영 중이던 12기의 원전을 2010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하지만 1995년 스웨덴 에너지위원회는 모든 원전을 폐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997년 안전성 문제로 원전 2기만 폐쇄했을 뿐 나머지 10기는 당초 폐쇄시한인 2010년을 넘어 지금까지 가동되고 있다.

엔즈스트롬 부사장은 “스웨덴 국민은 환경에 관심 많고 자연을 사랑하는 국민”이라면서 “원자력에 대한 일반 시민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정치인들의 생각은 열띤 토론 끝에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장 부지 선정에 실패한 경험도 있다.

1990년대 스토루먼과 말라 두 지역에서 타당성 조사를 했지만 현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조사가 중단됐다.

엔즈스트롬 부사장은 “주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초기 접근 방식이 잘못돼서 실패했는데 새로운 접근 방법을 찾는 데 귀중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대로 부지 선정에 실패한 SKB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우선 지질학적으로 적합한 장소를 찾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원전 인근 6개 지역에서 타당성 조사를 한 뒤 현지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했다.

SKB는 2009년 6월 포스마크, 오스카샴 등 두 곳으로 압축된 후보지 가운데 처분장 건설에 더 적합한 지질 조건을 갖춘 포스마크를 처분장 부지로 최종 선정했다.

직접 대화를 통해 얻은 주민 신뢰와 투명한 정보 공개가 부지 선정의 성공 요인이었다.

엔즈스트롬 부사장은 특히 부지 선정에 찬성할 경우, 또는 반대할 경우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 모든 주민들이 알게 한 뒤 부지 선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LAB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지하시험시설인 에스포 암반연구소는 거대한 지하 동굴을 방불케했다. 에스포섬 지하 약 460km에 조성된 연구소 갱도의 총길이는 4천700m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 방법 등 다양한 시험이 행해지고 있다.

CLAB 홍보 책임자인 제니 리즈는 “영구 처분장 부지로 선정된 포스마크가 이 곳 연구소보다 지질학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안전하면 포스마크에서는 더 안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LAB 측은 10만년 동안은 영구 처분장의 안전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지하시험시설 한쪽 벽에는 지구의 탄생에서부터 인류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90억년에 걸친 지구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90억년 동안 스웨덴 땅이 그대로 있었던 것처럼 10만년 동안에도 별일 없을 것이라는 게 CLAB 측의 설명이다.

CLAB과 에스포 암반연구소를 둘러본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기술적으로 관리가 가능하다고 확신에 차 설명을 했는데 과학 기술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yunzh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