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정동칼럼‘핵마피아’의 만행과 언론의 방조

[정동칼럼]‘핵마피아’의 만행과 언론의 방조

 

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의 대통령 퇴임식에서 세계대전과 냉전의 핵군비 경쟁으로 비대해진 군산(軍産)복합체의 존재를 지적하면서, 그 폐해에 대한 경각심도 가지도록 촉구했다. 현재 복합체는 핵발전소 추진을 명목으로 더욱 세력을 확대해 ‘관(官)·산·학’의 형태로서 호시탐탐 이익추구의 확대를 노리고 있다. 관·산·학 복합체는 시민·사회보다는 복합체의 상호이익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조직 형태 때문에 ‘핵마피아’라고도 불린다.

핵마피아 구성원으로는 전력산업, 퇴직 후 재취업을 기대하는 관련 부처 공무원, 연구비 및 사회적 직위를 확보하려는 핵공학자, 설비투자에 매달리는 건설 등의 산업, 원자력문화재단 및 관련 산업계의 광고비를 노리는 매스컴, 정치헌금과 선거지원을 기대하는 중앙·지방의 정치인, 모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전기요금 제도하에서 융자의 원금과 이익을 확실히 보장받는 금융·보험업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상호이익과 보호를 위해 핵발전소의 ‘안전 신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이를 비판·반대하는 측에는 집단히스테리 같은 거부반응을 보인다. 조금이라도 사고의 발생가능성 및 경제성의 결여 등과 같은 구조적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자기부정행위로, 자칫하면 이익공동체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과학적인 사실조차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심지어 핵공학자들은 종합적 정책판단의 정보제공이라는 조언자 역할을 넘어서, 정책결정의 판단까지 하려는 특권주의 의식을 갖게 된다.

이런 핵마피아의 폐해 사례가 한·미 원자력협정을 둘러싸고 부쩍 늘어 났다. 특히 개정협상의 주요 쟁점이었던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 결과에 대해서는 과학적 성실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들의 희망사항만을 장밋빛으로 치장하여, 광고회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흘리는 구태의연한 수법이 자행되고 있다. 한편,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를 중심으로 핵연료주기를 완성하려는 핵마피아의 주장과는 달리, 필자는 몇년 전부터 경제성·자원의 재활용률·핵비확산성·환경친화성 등의 측면에서 어떠한 합리성 및 타당성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여러차례 지적해 왔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협정의 본격적인 개정은 2년 후로 연기됐지만, 지금까지의 과학적인 합리성이 결여된 억지 주장으로는 2년 후의 협상결과도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추구해야 할 현실적인 목표는 상업화 규모의 재처리공장 및 저농축공장이 아니라 협정기간의 단축 및 실험실 내의 연구에 한정한 재처리와 저농축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핵폐기물 관리·처분에 관한 최신 정책을 보아도 우리가 목표를 정정해야 할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월16일자 경향신문 기사에서 소개한 미국 에너지부(DOE)의 핵폐기물 관리·처분전략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 핵폐기물의 관리·처분정책에 대한 검토를 위임받았던 ‘블루리본위원회(BRC)’가 2012년 2월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의 권고사항들을 실시하도록 요구한 의회에 미국 에너지부가 의회에 공표한 내용들이다. DOE의 전략은 재처리가 아니라, 지하의 직접처분을 기본정책으로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이 핵발전소 16기 건설을 계획 중인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대한 수출시장을 눈앞에 두고 선뜻 원자력협정 체결에 나서지 않는 배경도 검토 대상일 것이다.

정확한 과학적 사실 또는 정보는 봉인된 채, 오직 국내 핵마피아의 비과학적인 궤변이 만연했던 원인으로서는 ‘저널리즘의 쇠락’을 들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의 적극적인 동조 또는 소극적인 방조 같은 지원이 없었다면, 핵마피아의 형성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널리즘이 광고 확보에만 몰두하고, 정보의 분석보다는 취재 효율만을 고려한 전달방식으로 인해 핵마피아의 만행은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저널리즘이 핵마피아를 감시하는 역할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긴장관계는 유지하도록 중립성 및 공정성을 조속히 되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