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시론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텅 빈 논의’를 우려한다 / 김영희

 

원자로에서 바로 꺼낸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능은, 1m 안에서 17초만 피폭당해도 치사율 100%가 될 정도로 매우 강하다.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능이 천연우라늄 광석의 방사능 정도로 낮아지는 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조차도 최소 10만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하고, 이 방사능을 무독화할 방법을 인류는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독일의 탈핵 선언의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스웨덴에서 1977년 제정된 핵발전규정법은 핵발전소 소유주가 핵발전소에 연료를 새로 주입하기 전에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어디에서 ‘절대적인 안전성’ 기준을 충족하면서 최종 처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가장 우려를 낳았던 것은 4호기에 보관된 사용후 핵연료였다.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는 지상 5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는 핵발전소 3기분에 해당하는 1533개의 사용후 핵연료봉이 보관되어 있다. 이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의 하부 구조가 지진 충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 드러났으며, 만일 다시 큰 지진으로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가 손상되어 연료봉 속의 방사성 물질이 나올 경우, 체르노빌 사고의 방출량보다 약 10배나 많은 방사능 때문에 북반구 전체가 오염될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4호기에 사고가 날 경우 도쿄를 버리고 3500만명이 대피하는 시나리오를 세우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세계적인 방사능 전문가 헬렌 캘디컷은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면 핵무기도 필요 없으며 한국에 23기나 되는 핵발전소에 저장된 사용후 핵연료를 미사일로 타격하면 한국은 끝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근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를 운운하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어떠한가.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2024년에 완전 포화상태가 되고, 대안을 찾지 않으면 핵발전의 중단이 불가피하며 이는 블랙아웃(대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용후 핵연료는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겉으로는 공론화를 내세우지만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대국민 원자력 소통계획안’ 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3~4월은 사전준비 단계, 5~6월은 공론화 단계, 7~8월은 에너지기본법 수립 단계, 9월 이후는 정책 수용 단계로 일정을 수립했고, 이달 안에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한다. 이미 갈 길을 정해놓은 것이다.

진정한 공론화는 민주주의의 문제이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알 권리의 실현과 참여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는데,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위험성은 전혀 알리지 않고 있으며, 계획도 미리 세워놓고 논의 과정에서 어떤 의견이 나오든지 정해진 길을 가겠다는 것이어서 공론화는 사실상 형식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저 절차를 거쳤다는 빌미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용후 핵연료가 이렇게 위험하다는 것을 제대로 안다면 핵발전소 가동을, 혹은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을 지역에 유치해도 좋다는 사람이 있을까? 사용후 핵연료의 공론화는 과연 이렇게 위험한 사용후 핵연료를 계속 배출하는 핵발전소 가동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한 검토, 최종처분장과 탈핵 일정에 관한 논의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야말로 텅 빈 논의(空論)가 될 것이라고 나는 우려한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