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한미 원자력 협정, 그 뒤에 숨은 검은 음모는? 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집착하는가 ①

한미 원자력 협정, 그 뒤에 숨은 검은 음모는?

[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집착하는가 ①]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 대학 교수

 

“우리의 숙원인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또 무산됐습니다. 핵연료 재처리에 여전히 미국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대신 현행 협정 시한을 2년 연장하는 선에서 절충안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19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무산 소식을 전하는 문화방송(MBC) 권재홍 앵커의 멘트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언제부터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우리의 숙원”이 되었을까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핵발전소의 쓰레기를 핵연료 재처리로 정말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소리 높여 반대하면서, 왜 핵폭탄 원료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핵연료 재처리를 한국 정부는 “숙원”이라며 목소리를 높일까요?

그 복잡한 사정을 일본 마쓰야마 대학 장정욱 교수가 이번 주 5회에 걸쳐서 파헤칩니다. 장 교수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거짓말은 그만! 핵연료 재처리로는 절대로 핵발전소의 쓰레기를 해결할 수 없다! 핵연료 재처리는 잘못하면 동북아시아의 핵확산 도화선에 불을 댕기는 위험한 일이다!” <편집자>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원자력 산업계 관계자, 핵주권론자, 보수 언론 등은 최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이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에 관한 미국의 승인을 바란 것이다. 특히 2012년 일본이 원자력기본법의 목적에 안전보장(?)을 삽입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진행하자 이런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이들은 핵연료 재처리의 이유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든다.

1)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방법의 일종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을 통해서 사용 후 핵연료를 감량(減量)하여 고준위 핵폐기물의 최종 처리장의 규모와 관리 기간을 줄일 수 있다. 2) 핵연료의 제공 및 재처리가 가능하면 핵발전소의 수출 계약이 더욱더 늘어나 핵 산업을 성장 동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3) 우리도 핵 주권을 가져야 한다. 4) 핵공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핵연료 재처리가 필요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면 보통 ‘핵 마피아’라 불리는 핵 산업계는 사용 후 재처리 시설과 같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거대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함으로써, 자기 산업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게 가능하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럼, 먼저 한국 핵발전소의 사정부터 살펴보자. 국내에는 고리 1호기의 상업 운전(1978년)을 시작으로 4개 지역(고리, 월성, 울진, 영광)에서 23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3~5년을 사용하고 끄집어내는데, 2010년 9월 현재 약 1만880톤이 핵발전소 부지 내에 보관되어 있으며, 매년 약 700톤이 늘고 있다. (2012년 말에 이미 1만2000톤을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원자로로부터 막 끄집어낸 사용 후 핵연료의 방사능은, 1미터의 거리에서 단 17초만의 노출로 한 달 내에 100퍼센트가 사망하는 7시버트가 될 정도로 매우 강하다. 더구나 이런 사용 후 핵연료의 방사능이 천연 우라늄 광석의 방사능 정도로 낮아지는 데는 최소한 10만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 처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핵발전소 부지 내의 수조(水槽)에서 최소 5년 정도의 냉각 후에 공냉식(건식) 중간저장으로 전환하거나, 수조(습식) 속에서 충분히 냉각을 시키고 나서 지하 속 300~500미터 이상의 깊은 곳의 최종 처리장에서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구 보관하는 직접 처분 방식. (현재 전 세계에서 처리장 부지가 확정되어 건설 허가를 신청(2012년 12월)한 국가는 핀란드뿐이다.) 2) 화학적, 전기적인 공정을 통해서 일부를 재활용하고 나서 나머지를 최종 처분장에 영구 보관하는 재처리 방식.

이 중 어느 것을 택할지는 경제성, 안전성 등을 염두에 두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경우에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꼭 강조해야 할 것이 있다. 설사 미국의 동의로 재처리가 가능하더라도 최종 처리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1)이든 2)이든 최소한 10만 년간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할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 처분에 대한 명확한 결정을 유보하는, 이른바 ‘관망(Wait and See)’ 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 핵발전소 부지 내의 저장 시설 특히 수조가 2024년 영광 핵발전소를 시작으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소위 사용 후 핵연료의 저장 장소가 없어서 새 연료도 넣지 못하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 상태가 되어서 핵발전소의 가동 중지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국내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추진파는 1997년 무렵부터 연구해 왔던 ‘파이로-프로세싱’을 사용 후 핵연료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의 장점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1) 94~96퍼센트의 높은 재활용률, 2) 핵연료 가격의 상승에 대처하는 경제성, 3) 재처리 공장의 안전성, 4) 환경 친화성(감량화로 최종 처리장의 규모와 관리 기간의 단축), 5) 핵확산을 막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소듐(나트륨) 냉각 고속로(Sodium Cooled Fast Reactor, SFR)’도 함께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연료 주기의 완성을 위해서는 재처리 공장, 고속로, 연료 가공 공장이 세트로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처럼 파이로-프로세싱이 핵발전소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해결할 수 있는 부작용 없는 만병통치약일까? 앞으로 5회에 걸친 연재에서 파이로-프로세싱 추진파가 주장하는 다섯 가지 장점을 검증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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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정책을 고수하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의 6개국뿐이다. 독일,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등은 기존의 재처리 정책을 포기하였으며, 미국도 상업용 핵발전소의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해서는 직접 처분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본격적인 검증에 앞서 파이로-프로세싱이 무엇인지부터 간단히 알아보자.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방식은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습식은 영국, 프랑스, 일본(건설 중) 등이 상업용 재처리 공장에서 채택하고 있다. 국내의 추진파가 주장하는 파이로-프로세싱은 액체를 사용하지 않는 건식으로, 전기분해를 이용한 방법이다. 습식은질산 용액 및 유기 용매 등의 액체를 사용하여 대량의 재처리가 가능하나, 건식에 비해 공정 중의 2차 방사성 폐기물의 발생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단점이 있다.

건식의 파이로-프로세싱은 습식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고 주장된다.

1) 공정이 간단하여 시설의 소규모화가 가능하다, 2) 플루토늄의 단독 추출이 어렵다, 3) 용액 및 용매의 손상 위험이 없으므로 냉각 기간이 짧은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가 가능하다, 4) 임계(臨界)량이 높은 만큼, 취급량이 증가한다.

파이로-프로세싱의 원리

파이로-프로세싱은 1980대 초반 미국의 아르곤국립연구소(ANL)가 실험로인 고속로(EBR-Ⅱ, 2만 킬로와트)의 사용 후 금속 연료를 처리하고자 개발한 일괄 공정을 가리킨다.

핵발전소 개발 초기에는 상업용 핵발전소 발전과 동시에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Pu) 생산이라는 이중 목적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초기 금속 연료는 여러 가지 약점이 있어서, 점차 핵발전소의 핵연료는 산화물 연료로 대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NL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금속 연료의 약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고, 또 사용 후 산화물 연료를 금속으로 환원(還元)하여 건식으로 재처리하는 방법도 함께 연구하였다. ANL은 이러한 건식 재처리의 일괄 공정을 파이로-프로세싱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국내의 추진파만 파이로-프로세싱을 ‘재처리’가 아니라, 굳이 ‘재활용’이라고 부르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