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원전 마피아’에 휘둘리는 한미원자력 협상

[사설] ‘원전 마피아’에 휘둘리는 한미원자력 협상

 

민중의소리
입력 2013-04-18 08:02:53l수정 2013-04-18 08:39:19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원자력협정이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1956년에 처음 체결되어 1972년 첫 원자로 도입을 계기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이 협정은 전형적인 불평등 조약이다. 협정에서는 핵 물질에 대한 통제권을 처음부터 미국에 양도하였고,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어떠한 장비와 시설, 기술 개발까지도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는 우라늄 농축은 물론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까지 허용했으면서도 한국이나 다른 약소국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이를 막아왔다. 이처럼 국제법적 근거도 최소한의 공정성도 없이 미국 마음대로 만들어진 협정이 바로 한미원자력협정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이를 개정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뒤를 이어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에 목을 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외교 협상 이전에 이루어져야 할 국내적 합의도 없는 상태인데다 실제 개정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핵발전소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 농축 시설과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시설이다.

그러나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발전소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크게 변화하였으며,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의 장을 여는 대신, 지금까지 해 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하자는 식의 일방통행을 해왔다. 핵발전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민 모두의 안전 문제이자 에너지 문제로 박근혜 대통령이나 몇몇 정치인들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해서는 확립된 국가 정책도 아예 없는 상태다.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 의사부터 묻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 시설이나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권한을 얻는다 하더라도 이런 시설을 실제로 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놓고서도 커다란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2003년의 부안 사태는 지역사회를 폐허로 만들 정도였다. 하물며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보다 훨씬 위험성이 높은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부는 핵연료주기를 완성해 핵연료의 국산화를 이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핵 재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는 미국조차도 1972년 이후 경제성을 이유로 재처리된 핵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미 의회예산처의 올스작 예산처장은 핵연료를 사용한 후 폐기하는 것이 재처리해 재사용하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밝힌 바 있고, 미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스쿨의 계산으로는 후자가 전자보다 2배가량 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재처리된 핵연료를 쓰는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실제 핵재처리 시설의 활용도는 매우 낮은 형편이다.

정부가 핵재처리와 관련해 새로운 기술인양 꺼내놓은 건식 재처리(Pyro-processing)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군사적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실용화는커녕 최소한의 안전성도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전 수출을 위해 협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다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도 회의적이지만, 협정의 개정 없이는 수출 확대가 어렵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지금 세계 원전 시정에 뛰어든 나라들 중에 핵재처리를 끼워 파는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 2009년 UAE원전 수주도 현재의 협정 하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른바 ‘원전 마피아’, ‘원자력 카르텔’ 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지식사회에서는 ‘원자력 카르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정치가와 관료, 전력회사가 핵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내 국민의 눈을 가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정황은 완전히 동일하다. 이들 ‘원전 마피아’는 숫자는 작지만 전문적 지식을 독점하고 핵 발전에서 당장 나오는 이익을 언론계와 정가에 뿌리면서 자신들의 비즈니스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핵 발전에 대해 가장 앞장을 섰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80년대에 한국원자력 산업회의에서 업계 대표로 부회장을 지낸 ‘원전 마피아’의 일원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듯한 박근혜 정부조차 이 문제에서는 하나도 다르지 않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걸 보면 이들 ‘원전 마피아’ 세력은 세간의 짐작보다 훨씬 막강하다.

외교 협상은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내놓아야 하는 치열한 전장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처럼 한미원자력협정에 매달리면, 미국은 반드시 그 반대급부를 요구하게 되어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허울뿐인 ‘한미동맹 강화’ 대신 내어준 쇠고기 협상이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꼭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