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시커멓게 타 죽어가던 시체를 어떻게 잊겠소!” 현장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96세 老의사의 절규

“시커멓게 타 죽어가던 시체를 어떻게 잊겠소!”

[현장]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96세 老의사의 절규

남빛나라 기자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의사는 나밖에 없다.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내 아이, 주변에 아는 사람의 아이, 내 친척의 아이를 포함한 모든 아이가 방사능의 해를 입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 손으로 반드시 핵발전소를 멈춰야 한다.

올해로 만 96세를 맞은 노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치자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일본의 저명한 반핵운동가 의사인 히다 슌타로 씨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함춘회관에서 열린 강연회 ’히로시마와 후쿠시마 : 그 핵의 상처를 말한다’에 연사로 참석해 피폭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1945년 히로시마에서 원자 폭탄이 터질 당시 그라운드 제로(원자 폭탄이 폭발한 지점)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후 그는 평생 피폭당한 의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지속해서 피폭자를 치료하며 핵의 위험성을 고발하는데 앞장서 왔다. 지난 2005년 영국 BBC가 방영한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에서 히다 씨의 경험이 재연되기도 했다.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 1년이 흐른 지난해, 잠시 고향을 방문한 일본 주민들. ⓒ도요다 나오미

부라부라 병…이유 없이 아픈 사람들

히다 슌타로 씨는 일본이 핵폭탄을 경험한 뒤에도 국제 정세로 인해 핵에 반대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패전 후 일본은 실질적으로 미국에 점령당했다”며 “미국 정부는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은 방사능 때문이 아니’라고 매일 같이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히다 씨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자를 계속해서 진료해온 의사들은 모두 미국의 이야기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히다 씨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더 많이 그리고 가까이에서 피해자들을 봐온 그였기 때문에 더욱더 미국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원폭 피해자를 봤을 때 가장 고통받았던 경험을 말하고 싶다”며 핵폭탄 투하 당시 그를 찾아왔던 환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폭 현장에서 머리카락이 빠진 채 시커멓게 타 죽어가는 시체를 수도 없이 목격한 히다 씨지만 정작 그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환자는 “겉으로 볼 때는 아무 이상이 없는 듯했던” 한 남자였다.

히다 씨의 말에 따르면 원래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던 그 환자는 원폭 당시 일이 있어 오사카에 머물고 있었다. 그 남자는 원폭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라디오 뉴스를 듣고서야 히로시마에서 엄청난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자는 부인과 자식의 생사를 걱정하며 한달음에 히로시마로 달려왔지만 결국 가족들을 찾지 못했다.

“집 같은 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시체들이 마치 그냥 자는 듯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던” 히로시마에서 종일 가족을 찾아 헤매던 이 남자가 어느 날 히다 씨에게 찾아왔다. “몸이 너무 나른하고 무겁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살펴도 도저히 증상이 보이지 않아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결국 히다 씨는 뾰족한 처방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부라부라 병(ぶらぶら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어로 ‘빈둥빈둥 병’으로 해석되는 이 병에 걸리면 몸이 나른해서 일할 수가 없었다. 부라부라 병에 걸린 환자들은 “멀쩡한 몸을 가지고서 힘이 없다고 엄살을 부리며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히다 씨 역시 당시에는 병의 원인을 몰라 당황스러웠고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야 했다. 그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이후에 생겨난 부라부라 병과 같은 병들이 지금은 ‘만성 방사능증’으로 불린다”며 “현재 핵발전소가 있는 독일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도 이런 병을 가진 환자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몇 년 지나면 후쿠시마에도 희소병 발생”

이어서 히다 씨는 지난 1975년 유엔 사무총장(쿠르트 발트하임)에게 핵 실험을 그만둬야 한다는 의견을 일본 대표로 전달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사무총장은 ‘우리가 토론해서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의견은 묵살됐다”고 말했다.

히다 씨는 “당시 나는 피폭자들을 치료할 방법을 논의하는 심포지엄을 열자고 유엔에 요구했다”며 “그러나 유엔은 미·일 양 정부의 의견을 듣고 난 뒤 ‘원폭 피해자는 1명도 없다. 죽을 사람은 이미 다 죽었고 생존자는 피해자라고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저의 의견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유야무야 식으로 피해를 덮어온 히로시마 원폭 당시와 현재 후쿠시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히다 씨의 생각이다. 그는 “70여 년이 흐른 지금 후쿠시마 현에도 아이들을 포함해서 방사능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원자 폭탄의 방사선과 같은 것이 지금 핵발전소에서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히다 씨는 “일본의 후쿠시마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며 “아무리 능력이 있는 의사라도 자신들이 아는 의학적 근거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면 후쿠시마에서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발전소 많은 나라인 한국 국민에게 부탁”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웃 나라 한국에 대한 히다 씨의 걱정은 매우 컸다. 현재 한국은 23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으며 4기의 핵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그는 “한국에도 핵발전소가 수십 기 있다고 들었다”며 “지금은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일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핵발전소는 일정량의 방사능을 공기 중에 방출한다”고 우려했다.

히다 씨는 “원래 핵발전소 자체가 일정량의 방사선을 누출하는 구조”라며 “이 늙은이가 이렇게 이웃 나라에까지 와서 핵발전소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워나가자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핵발전소는 싸고 안전하게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핵발전소 찬성론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는 한국에서도 ‘핵발전소 신화‘로 회자된다. 이에 히다 씨는 “싸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방사능이라는 공포의 독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히다 씨는 “암 환자를 만들어내는 핵발전소를 가능하면 하나씩이라도 줄여나가야 한다”며 “그런 활동 속에서 매우 큰 저항에 부딪히겠지만 경제성이나 편리성보다 여러분의 생명이 파괴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히다 씨는 “핵발전소가 많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국인 여러분은 핵발전소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며 “한국인의 힘으로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