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방사선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다… 근원 없애야” 방사선 피폭 위험성을 고발한 일본인 의사 히다 슌타로 선생과의 만남

“방사선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다… 근원 없애야”

방사선 피폭 위험성을 고발한 일본인 의사 히다 슌타로 선생과의 만남

13.03.19 15:00l최종 업데이트 13.03.19 17:54l

 


▲ 17일, 서울의대 함춘회관에서 강연을 하는 히다 슌타로 선생.
ⓒ 다카노 사토시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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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겉으로는 전혀 몸에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병명을 붙일 수도 없는데, 몸이 안 좋아 도저히 일 할 수도 없고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겪는 피폭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가지고 ‘괜히 일하기 싫으니까 꾀병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피폭자들을 치료하면서 고통받는 피폭자의 병명도 원인도 모른 채, 살리지 못하고 죽어가는 피폭자들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스물여덟 살에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피폭을 체험하고, 원폭 투하 직후부터 피폭자의 구호와 치료를 하며 핵 피해의 참상을 그 누구보다 현장에서 지켜본 일본의 방사능 피폭 전문 의사인 히다 슌타로 선생이 지난 17, 18일 양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틀 동안 히다 선생은 한국의 원폭 피폭2세 환자 및 국내 의학자와 보건의료활동가들과의 대담을 비롯하여 후쿠시마와 히로시마에서 벌어진 핵 피해에 관한 강연을 하고,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2세 환우의 실태조사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국회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큰 병으로 고생하고 죽어가는 피폭자들을 숱하게 지켜봐야 했다”

히다 선생은 17일 서울의대 함춘회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방사능 피폭과 건강피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참석한 수많은 청중 앞에서 96세의 고령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시종일관 열정적이며 또렷한 음성으로 두 시간 반 동안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일본은 전쟁 때 한국인 여러분께 나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원폭으로 수십만 명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패전 후 일본은 7년간 미 군부의 점령을 받았는데, 미 군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원폭의 영향은 없다며 7년을 매일같이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피폭자들을 진료해 온 의사들은 미군의 말이 전부 거짓말이란 것을 잘 압니다. 원폭투하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뿐 아니라 나중에 피폭지로 들어간 것만으로 그 후에 큰 병으로 고생하고 죽어가는 피폭자들을 숱하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당시 의사들이나 학자들이 방사선 피폭자에 관해 연구하지도, 치료하지도 못하게 했다. 피폭 당사자나 그 가족들에게도 피해 참상에 대해서 외부에 발설하는 것을 금지 시켰다. 1949년에 원폭상해조사위원회(ABCC)가 히로시마에 피폭자들을 대거 입원시켜 치료는 안 하고 오로지 검사만 해서 연구조사에 이용한다는 풍문을 들은 젊은 의사 히다는 당시 후생대신과 연합군총사령부에 피폭자 치료를 하라며 교섭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하며 부당한 현실에 분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도쿄와 사이타마 등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료소를 설립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과정에서 돈이 없는 피폭자나 다른 환자들도 안심하고 와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1953년 창립)를 창립하는 데 참여한다.

히다 선생은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지금 후쿠시마에 대해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겉으로는 후쿠시마의 피해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나 오염은 미미해서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에게는 ‘노이로제’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미국의 원조를 받는 일본인 학자와 의사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후쿠시마를 앞으로 잘 지켜봐 주세요. 수년 후에는 ‘원폭부라부라병(원폭의 만성적 후유증을 일컬음)’처럼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일을 할 수 없고 건강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출현할 것입니다. 핵발전소가 있는 한, 인간의 생명은 파괴되어 갈 것입니다.”

또 “그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암 환자를 만들어내는 핵발전소를 한국에서도 단 하나씩만이라도 없애가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핵발전소를 가동해 전기를 만드는 이 시스템이 존속되는 한, 앞으로 태어날 모든 아이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해치는 산업을 인정해서는 안 되며, 나와 내 후손을 지키기 위해 의사와 학자들도 필사적으로 싸워야 합니다”고 말했다.

 


▲ 17일 서울의대 함춘회관에서 강연을 하는 히다 슌타로 선생.
ⓒ 다카노 사토시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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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 선생은 강연 전에 외조부모와 어머니 등이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한 한국인 원폭 2세’환우’와의 만남의 자리에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피폭자가 나쁜 게 아닙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 피폭을 당했지요. 피폭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풍조도 사회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힘으로 차별을 누르고, 피폭자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피폭자 분들도 숨어서 살면 안 됩니다. 내가 나쁜 게 아니다, 원폭을 투하한 쪽이 나쁘다고 당당하게 말하십시오. 그리고 한국의 피폭자와 2세 분들이 지금 정부에게 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국회가 나서서 법을 제정해 피폭자와 2세 분들이 의료비만이라도 걱정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피폭자와 피폭 2세, 3세 중에 건강 문제로 고통당하는 데 그것이 방사능 피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학자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분노와 슬픔에 대하여는, “평생을 수많은 피폭자를 진료하고 치료하였지만, 병을 고치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자주 지켜봐야 했습니다. 의사로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방사선은 인간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될 물질이었습니다. 현대의 과학으로서 방사선 피폭을 완전히 치료할 방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방사선에 피폭되지 않도록 핵무기와 핵발전을 모두 없애는 근본적인 방식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폭자분들은 ‘나는 절대로 병에 지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갈 것이다’라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건강과 체력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명은 자신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한국 피폭자에 대한 원호는 일본이 책임져야”

 


▲ 18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국내 원폭피해자 및 2세환우 실태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의 정부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히다 슌타로 선생.
ⓒ 나카노 아키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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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8일, 한국원폭피해자1,2세와 함께 국회 기자회견을 마친 뒤. 맨앞줄 휠체어를 탄 사람이 히다 슌타로 선생.
ⓒ 원폭피해자및자녀를위한특별법추진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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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국회 기자회견에서도 노구를 이끌고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20분 동안 연설을 했다.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사흘쯤 지나자 차차 방사능으로 죽어갔습니다. 고열, 코와 입안 출혈, 화상은 없는데 반점이 출현하고 전신의 털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피폭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뿐 아니라 뱃속의 아기나 피폭 2세와 3세에게도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한 다양한 질환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원폭 피해에 대하여 미국은 부인하였으며 국민에게도 정부에도 함구하도록 금지령을 내려 규제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피폭자와 2세들이 하고 있는 특별법제정운동을 적극 지지합니다. 본래는 한국 피폭자에 대한 원호는 일본이 책임져야 하는 일입니다. 한국에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책임을 물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고도 “원폭으로 죽을 사람은 이미 다 죽었고, 더 이상의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없다”고 거짓말을 했던 미국. 그리고 현재 후쿠시마에서도 소아 갑상선 질환을 비롯하여 다양한 건강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미미한 방사선일 뿐이며, 후쿠시마 사람들의 노이로제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미국과 일본정부 그리고 핵산업계와 어용학자들 때문에 언제나 전 세계 핵 피해 현장에서는 거짓말이 난무하고 진실이 가려졌다. 그러나 현장의 피해자들과 그 피해자들을 오랜 세월 지켜보며 치료에 종사해 온 현장 의사들은 알고 있다. 방사선이 남긴 상처들을.

히다 선생은 “살아있다면 언젠가 또 만나자”며 작별인사를 남기셨지만, 부디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시기를 바란다. 피폭자의 희망으로서, 핵 피해의 진실을 가리는 거대 권력에 맞서온 양심있는 의사이자 반핵평화운동가로서.

히다 슌타로肥田舜太郎 선생은
1917년 히로시마시 출생. 1945년 8월 6일 폭심지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피폭을 경험했다. 히로시마의 원폭 현장과 피폭자의 고통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일본 의사로서 원폭투하 직후부터 피폭자의 구호와 치료를 담당해 왔고, 64년간 6천 명이 넘는 피폭자들을 지속적을 진찰, 치료하면서 ‘원폭 부라부라병(만성방사능증을 일컬음)’이라는 증상과 저선량내부피폭의 영향에 관한 연구에도 힘썼다.

1953년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 창립에 참여했고, 전 일본민의련 이사, 사이타마협동병원장, 일본 피단협 원폭피폭자중앙상담소 이사장 등을 역임. 1975년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총 37개국에서 피폭의 실상을 알리며 핵무기 폐기를 호소하는 활동을 해왔다. 주요저서로는 <히로시마가 사라진 날>(1982년), <내부피폭의 위협>(2005년), <내부 피폭>(2012년), <피폭과 피폭방사선에 지지 않고 사는 방법>(2013년) 등이 있으며, 역서로 <인간과 환경에 대한 낮은 수준의 방사능의 위협>(2011년) 등이 있다.

2005년 BBC 다큐멘터리 <히로시마>에서 그의 경험이 재현되었고, 2006년 그의 증언과 연구를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핵의 상흔>이 전세계에서 상영되었다. 현재 96세인 히다 슌타로 선생은 그의 나머지 생애를 후쿠시마에서 다시 벌어진 핵사고의 위험성과 방사선의 건강영향에 대하여 알리고 핵무기와 핵발전을 없애 더이상의 피폭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운동에 바치고 있다. 이번 방한은 그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