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강력한 중앙집권, 새정부 열쇳말은 ‘박정희’?

강력한 중앙집권, 새정부 열쇳말은 ‘박정희’?

박근혜 시대에 드리운 박정희 그림자

곽재훈 기자

 

‘박근혜 정부’가 첫발을 내디뎠다. 새 정부에 쏟아지는 기대와 관심 속에, 새 정부 곳곳에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이 눈에 띈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신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예상하는데 있어서 ‘박정희 스타일‘이 중요한 열쇳말로 떠오르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육영수 전 영부인이 문세광에 의해 암살된 1974년 광복절부터 1979년 10.26 사태까지 만 5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박정희 정부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이 향후 박 대통령의 정부 운영에 은연중이라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개연성 있는 추측이다.

경제기획원과 경제부총리

실제로 새 정부의 정책과 인사에는 곳곳에 박정희 시대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5대 국정목표의 첫머리에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가 놓였다. 반면 대선 기간 박근혜 캠프의 10대 공약 수위에 있었던 경제민주화는 하부 개념으로 전락했다. 새 정부 경제정책이 성장 우선주의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와 내각에서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할 인물들이 경제기획원(EPB) 출신인 것도 눈길을 끈다. 경제기획원은 1961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의해 창설됐고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급으로 격상되면서 박정희 정부의 성장정책에서 견인차 역할을 했다.

부활된 경제부총리를 겸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박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은 현오석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다. 현 장관 후보자는 행정고시 합격 후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했고, 재정경제원으로 명칭이 변경됐을 때 경제정책국장을 지냈다. 조원동 신임 청와대 경제수석도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기획원 외에 두 사람이 모두 몸담았던 KDI도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곳이다.

그간 이명박 정부에서 강만수, 윤증현 기재부 장관 등 재무부 금융분야, 이른바 ‘모피아(MOFIA)’ 출신들이 득세했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이헌재, 김진표 경제부총리도 ‘모피아’ 출신으로 분류된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를 연상케 하는 수사(修辭. 레토릭)가 정권 이양기에 인구에 회자된 것도 이채롭다. 박 대통령 본인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 신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였던 안상훈 의원은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구상에 대해 “제2의 새마을 운동“이라고 했고, 고용·복지분과 간사였던 최성재 신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지명 소감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초석을 놓는데 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성장과 함께 박정희 시대의 또다른 키워드였던 ‘안보’ 역시 강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발표에서 인수위는 ‘국방예산 증액을 국가재정증가율을 상회하는 폭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정홍원 총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공산주의라는 것은 강한 데에 약하고 약한 데에는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강한 모습을 보이면 (북한이) 언젠가 대화에 응해 오리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되살아난 ‘과학입국 기술자립’

새 정부의 구상이 담긴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에도 ‘박정희 코드‘는 숨어 있다. ‘창조경제’ 전담 부처로 박근혜 정부의 실세 부서가 될 것이라는 평을 듣는 신설 미래창조과학부가 대표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휘호 중 유명한 것이 ‘과학입국 기술자립(科學立國 技術自立)’이었다.

유명 대중소설로 잘 알려진 고(故) 이휘소 박사와 박 전 대통령 간의 에피소드도 2012년 판으로 거듭났다. 이 에피소드에 담긴 이미지 중 ‘핵’과 관련된 부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1~2월 미 정부 및 의회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원자력협정 재개정을 2차례나 강조한 것과 연결된다. (☞관련기사 보기)

박 전 대통령은 미국 측과의 약속을 깨고 1978년까지 핵개발을 계속할 만큼 핵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기사 보기) 다만 소설과는 달리, 이휘소 박사는 박 전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이나 독재에 비판적이었다는 것이 이 박사 유족의 증언이다. 핵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이 처음 시작된 것도 박정희 시대인 1978년이었다.

이휘소 박사 에피소드에서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아무래도 ‘핵’이지만, 이 에피소드에 담긴 다른 이미지도 있다. ‘해외 인재 등용’이다. 박 전 대통령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 자리를 잡은 한국인 출신 학자와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조국 근대화’ 구상에 동참해줄 것을 애국심으로 호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으로 지명된 김종훈 후보자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 자수성가한 이민 1.5세대다. 신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0년 넘게 일한 최순홍 전 유엔 정보통신기술국장이 임명됐다. 박 전 대통령의 유학파 인재 등용을 연상시킨다는 평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가운데, 새 정부의 여러 부분에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연상된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뉴시스

내각·청와대 곳곳에 ‘박정희 키드’

정부조직개편안에 담긴 또다른 ‘박정희 코드’는 강력한 중앙집권형 체제다. 청와대 경호처를 장관급 경호실로 격상하고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을 첫 실장으로 보임한 것은 대통령의 위상을 드높이는 조치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게 해 대통령이 행사하는 인사권의 ’1차 거름막’ 역할을 하게 한 부분은 ‘강한 청와대’의 마침표다.

정부조직개편안 발표 시기부터 제기된 이같은 관측은 국무위원 및 청와대 주요 보직자 인선을 거치며 더 힘을 얻었다. 비서실장에는 국회 정무위원장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의 허태열 전 의원이, 정무수석에는 ‘친박 중의 친박’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임명됐다. 반면 내각의 수장인 정홍원 총리·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전문성과는 논외로 정치적인 힘이 아무래도 떨어진다는 평이다.

평균연령을 봐도 청와대(61.1세)가 내각(58.2세)보다 약 3살 많다. 내각보다는 청와대가 강한 것이 1기 박근혜 정부 인적 구성의 특성인데, 그렇다고 청와대 실장이나 수석 가운데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만한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1인의 국정 지배력이 극대화되는,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친정 체제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관련기사 보기)

내각과 청와대 인선에도 ‘박정희 코드’는 숨어 있다. 총리 이하 국무위원 18명과 청와대 실장·수석 12명까지 30명 가운데 관료 출신이 14명,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지만 원 출신이 관료인 허태열, 유정복(내무관료), 김장수(군인), 진영(판사) 의원까지 넣으면 18명이 된다.

관료 출신 가운데서도 윤성규 환경장관 내정자는 기술관료 출신(기술고시13회)이다. 학자·연구자 출신도 7명이나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거의 모든 정책을 고시 출신 관료나 학자들과 상의했던 점이나 기술 인력을 중시했던 점을 연상시킨다는 평이다.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있는 ‘박정희 인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4년부터 전두환 정권기인 1985년까지 청와대 비서실 정무1실에서 근무했다. 10.26 사태까지 5년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한 것.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기획원 사무관 시절이던 1975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고,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전 영부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설립된 서울대의 지방출신 수재 기숙사 ‘정영사’ 출신이다.

2대에 걸친 인연도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서종철 국방장관의 아들이다. 서 전 장관은 5.16 군사정변 당시 정변 주도세력의 지휘소였던 6관구 사령관이었고 박정희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장관을 지냈다. 특히 서 전 장관은 1975년 인혁당 사태 당시 군법회의에서 도예종씨 등 8명이 사형판결을 받자 그 즉시 사형집행명령서에 서명해 이들을 사형시킨 장본인이다.

또 류길재 통일장관 후보자는 고 류형진 대한교육연합회장의 아들이다. 류 전 회장은 5.16 사태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장 고문을 맡았고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작성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