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박근혜, 성공하려면 독일을 배워라!

박근혜, 성공하려면 독일을 배워라!

[초록發光] 에너지 민주화의 첫걸음

조보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6 오전 10:50:01

한 달 뒤에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국민 대통합과 경제 민주화를 강조해왔다. 경제 민주화를 위한 ‘지하 경제 양성화’가 21세기판 ‘범죄와의 전쟁’이 될지, 아니면 ‘금융 실명제’와 같은 효과로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신화’에 이어 딸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 신화’로 역사에 기록되길 원하는 걸로 보인다.

5년 뒤에 박 대통령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는 관심 없다.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지가 걱정될 뿐이다. 그럼에도 당선인이 내건 민주화와 복지에 한마디 해야겠다.

얼마 전, 한 노모는 높아가는 전기 요금에 난방비를 아끼겠다고 전기장판의 온도를 낮췄다가 동사했다.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밤을 지새우던 어린 손자와 할머니는 화염에 휩싸였다. 2013년 지금, 우리와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다. 이것뿐인가. 먼 바닷가의 발전소로부터 서울로 전기를 끌어 오느라 내 집 앞에 세워질 송전탑에 반대하던 한 할아버지가 분신했다. 우리가 얼마나 비민주적인 에너지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이는 일들이다.

당선인도 공약으로 에너지 세제 개편과 재생 가능 에너지의 확대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방식으로는 지금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에너지 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전면적인 에너지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전력난 해소 방안은 에너지 민주화

전력과 관련해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정부가 에너지 가격 왜곡에 따른 수요 급증과 전력난 해소 그리고 에너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한 방안으로 14일부터 전기 요금을 평균 4퍼센트 인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네 차례나 전력 가격을 인상 하였으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업들은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오히려 기업을 죽이는 정책을 쓰고 있다며, 이에 동조해 거대 언론은 정책의 실패를 기업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 정도로 수준으로는 기업 경쟁력에 별 영향도 없고, 오히려 전력난 해소에 기업의 전력 소비 감소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도 적자에 시달린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회적 비용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 국민들은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 없는 사람들은 높아진 에너지 가격에 호주머니 사정은 더 빠듯해지고, 정부는 매일 에너지 수급 위기를 이야기하며 가정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계도한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막상 궁지에 몰린 국민은 누구를 물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후쿠시마 사고와 핵발전소의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핵 발전을 대안으로 받아들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

당선인 역시 전기 요금의 현실화와 에너지 세제 개편, 기초 생활용 전기 사용량 보장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대해서는 이미 계획된 부분은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한국전력의 민영화를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당선인이나 인수위원회에서도 에너지 민주화를 위한 근본적인 고민, 즉 에너지 시스템 전환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한국전력의 민영화로 전력 가격이 낮아질 거라는 계산이겠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설사 민영화로 인해 잠시나마 가격이 낮아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지금의 중압 집중화된 에너지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전력 수급의 불안을 심화시키고, 에너지 빈곤층의 확대만을 가져 올 것이기 때문이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자유 시장이나 어설픈 가격 정책이 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을 에너지 정책에 참여시키고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다.

시민들에게 강의를 할 때, 많은 분들이 자신이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만드는지, 어떻게 자신의 집까지 도달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 내일은 무엇을 입을지에 대한 고민은 쉬워도 에너지에 대한 고민은 어렵다.

요샌 식품과 옷에 어떤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 관심이 높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에너지를 쓰면서도 이상하게 에너지 앞에만 서면 우리는 주는 대로 받는 꼭두각시 소비자로 전락한다. 아무리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를 쓰고 싶지 않아도 전원을 켜는 순간 우리 모두는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고객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전기 요금에다 핵발전소 홍보하라고 돈도 보태고 있다.

이것이 중앙 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 중 가장 근본적인 한계이다. 에너지는 누구나 쓰지만 아무나 알 수는 없는 먼 곳에 있다.

에너지 민주화의 첫걸음

ⓒ뉴시스

에너지 민주화는 단순히 에너지 가격을 낮추거나,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찾는 것만이 아니다. 어떠한 에너지를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에너지 민주화이다.

그러니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 되어야 할 문제는 국민들을 이런 고민에서 멀어지게 하는 중앙 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을 지역 분산형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마을로 에너지 시스템이 내려올수록, 시민들이 에너지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한 발전의 성공 사례로 가장 많이 소개되는 독일의 경우도 지역 분산형 시스템을 기반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이제 막 국내에서도 한 발 내딛기 시작한 햇빛발전조합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시민들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소규모 태양광 발전소나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소를 세우고 지역 주민에게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발전된 전기를 공급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익도 창출한다. 이런 형태의 발전소는 에너지에 대한 민주적 의사 결정을 보장할 뿐 아니라 온실 기체 감축과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가 있다.

문제는 에너지 시스템이 전혀 다른 한국에서도 독일과 같은 시도가 성공할 것인가이다. 물론 가능하다. 단, 조건이 있다. 독일에서 소규모 재생 가능 발전소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분산형 시스템에도 있었지만, 이것을 견인한 ‘발전 차액 지원 제도’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

시민들이 세운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소를 통해 발전되는 전기를 일정 가격 이상을 정부가 보장해주는 것이다. 실제 한국도 2002년에 같은 정책을 실행했고, 그 결과는 매우 좋았다(비록 전력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전력 산업 기반 기금으로 지원했지만). 오히려 그 결과가 너무 좋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이명박 정부는 예산 핑계로 폐지해버렸다. 정부의 예상보다 태양광 발전이 빠르게 늘어 애초에 부족하게 편성한 재원이 고갈된 것이다.

결국 발전 차액 지원 제도를 통해 확대하려던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의무 할당제라는 이름으로 발전사에 떠넘겼다. 발전사들은 산을 깎거나 섬을 통째로 태양광 패널로 뒤덮어가면서 할당된 재생 가능 에너지의 용량을 채우는 비합리적이고 반환경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이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히 재생 가능 에너지의 확대에 초점을 맞췄을 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문제가 아니고 뭐겠는가.

당선인이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똑같이 반복하지는 않으려면, 발전 차액 지원 제도을 부활시켜야 한다. 발전 차액 지원 제도의 부활은 이제 막 움트고 있는 햇빛발전조합들도 더 왕성하게 자라나도록 하는 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지금의 몇몇 키 플레이어들에 의해 조종 되는 비합리적인 에너지 시스템도 견제할 수 있다. 당선인이 중요한 에너지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에너지 안보의 문제도 해외 자원 개발과 같은 공격적인 방식이 아니라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을 통해 가능해 질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분명 보수다. 그 뒤에는 핵과 화석 자본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다. 그럼에도 입 아프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에너지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 민주주의가 유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