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원전 때문에 생기는 정전 위험

[기고]원전 때문에 생기는 정전 위험

[경향신문] 입력 : 2012-12-31 19:32:43ㅣ수정 : 2012-12-31 21:36:18

 

올해는 여느 해보다 한파가 심할 거라는 우려 속에 원전 가동 수도 적어서 전력난이 심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현재 가동이 중단된 원전은 5기다. 원자로 헤드 관통관 균열 문제가 발생한 영광원전 3호기, 해당 부품 중 위조 부품이 97%를 차지한 영광 5·6호기, 수명이 다해서 멈춘 월성 1호기, 증기발생기 교체 문제로 중단된 울진 4호기다. 그런데 원전이 부족해서 정전 위험이 있는 것일까? 아니다. 원전 때문에 정전 위험이 있다.

우선 ‘정전’과 ‘블랙아웃’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정전은 송전선이 번개를 맞아서 발생하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전봇대가 넘어져서 선로가 끊기거나 도로공사 중 굴착기가 지하 송전선로를 건드렸을 때도 발생한다. 변전소의 결로현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정전은 오래가지 않는다. 수십분 또는 수시간 내에 복구가 가능하다.

문제는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체 송전망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경우다. 그게 블랙아웃(계통 붕괴)이다. 문제가 생긴 지역의 송전선로를 차단해서 해당 지역을 복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차단이 늦어지거나 이런 경우가 여기저기 발생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순식간에 전체 송전망으로 문제가 확산되면서 대규모 정전사태인 블랙아웃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역적인 정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모든 전력시스템이 정지되는 ‘블랙아웃’은 복구하는 데 빠르면 3일에서 10일까지 걸릴 수 있다.

전기 수요는 예측 가능하다. 수십년간 계절별로, 요일별로, 시간대별로 소비패턴이 반복되고 일정한 추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전기 수요를 일으키는 환경 역시 예측이 가능하다. 예상 전기 수요는 오차가 별로 없다. 100만㎾짜리 대규모 발전소, 원자력발전소 하나에 고장이 발생해서 갑자기 송전망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문제다. 대용량 원전이 갑자기 전기 공급을 멈추게 되면 지역 송전망 차단으로 복구할 수 없는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 원전은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가동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안전하지 않은 대용량 원전이 오히려 전기 공급 체계를 불안정하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100만㎾ 이하로 예비전력이 떨어지면 ‘심각’ 단계의 경보가 발령되지만 예비전력 10만㎾만 있어도 문제는 없다. 전기가 일단 부족해지게 되면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전기가 부족한 지역의 송전망을 전체 송전망에서 탈락시키고 나서 다시 전기를 공급하면 된다.

전력난은 전력소비가 많을 때 발생하는 문제다. 전력난을 우려할 만큼의 최대전력소비를 기록하는 날은 1년 중에 며칠이고 그 며칠에서도 한두 시간이다. 여름에는 한낮에 더운 열기 때문에 발생하는 냉방전기 수요로 오후 3~4시쯤에 발생한다. 겨울에는 전기난방 수요로 오전 10~11시에 발생한다. 점심 손님을 맞기 위해 가게들이 일제히 전기난방 스위치를 올리는 것이다. 전력수급 경보는 이때를 위한 것이다.

전기 소비가 늘어나 예비전력이 400만㎾ 이하로 떨어지면 ‘관심’ 단계 발령을 내리는 것과 함께 전기요금을 두 배쯤 올리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연히 전기 소비를 줄일 것이다. 최대전기소비 시간을 피해서 전기를 소비할 것이다. 전기제품의 사용이나 전기를 이용한 공장 업무도 전기 소비가 적은 시간대로 분산해서 사용할 것이다. 전력난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비용도 별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싼 것에 더해서 전기 소비가 아무리 늘어도 요금 변동이 없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80%를 차지하는 산업계와 상가 등 일반 건물이 쓰는 전기요금은 누진제도 없다.

전력시장에서 시장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 정부가 할 일이라곤 전력난 공포감 조성이다. 전기가 부족하니 지금 전기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정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겁주는 거다. 이제는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보자. 최대전력소비가 예상될 때 잠깐 가동할 수 있는 소규모 가스발전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대형 건물에 있는 자가발전설비만도 원전 19기 분량으로 6만대가 넘는다. 웬만큼 큰 공장들도 자가발전설비를 갖추고 있다. 전력난이 예상되면 대규모 전기 소비자들, 대형 건물, 백화점, 큰 공장들이 자가발전기를 가동하면 된다. 문제는 전기요금이 너무 싸다보니 자가발전기를 안 돌리려 하는 거다.

전기난방을 제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11년 최대전력소비에서 전기난방 비중이 25%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원전을 가동해서 생산한 전기가 30%인데 대부분을 전기난방하는 데 쓰는 셈이다. 난방기 온도를 1도만 조정해도 원전 1기 분량을 절감할 수 있다. 전기냉난방기를 가스냉난방기로 교체해도 된다.

수요를 줄이는 정책은 얼마든지 있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전기 사용을 위해서라도 전반적인 원전의 안전조사가 시급하며 원전 중심의 전력정책은 전력수요 관리와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팀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