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원전, 이대로 안된다>(상) “수명 다한 ‘캔두형’ 월성 1호기 생산국서도 외면, 폐쇄해야”

[원전, 이대로 안된다](상) “수명 다한 ‘캔두형’ 월성 1호기 생산국서도 외면, 폐쇄해야”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지난 29일 경북 경주에 있는 월성 원전 1호기가 가동을 멈추었다.

월성 1호기는 다음달 20일 설계수명 30년이 다 돼 폐쇄 논란을 겪고 있는 원전이다. 월성 1호기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설계수명이 다했음에도 10년 동안 수명 연장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9일 발생한 월성 1호기 가동 정지에 국민 모두가 불안에 떠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체르노빌, 후쿠시마 핵사고에서 경험한 것처럼 단 한 번의 사고가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와 한수원이 국민과 달리 느긋하다는 것이다. 이웃 일본의 원전사고를 간접 경험하고도 안이한 대응과 변명성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급상 고장(incident)과 사고(accident)가 다르게 분류돼 있어 이를 구분해야 하며, 국내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는 입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3월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앞바다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반대, 노후 원전 완전 폐쇄, 신규 원전 건설 반대 등을 주장하며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분명 IAEA는 그렇게 구분하고 있다. 이 기구의 등급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다. 그러나 국민은 지금 IAEA 기준을 따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수명이 다 된 핵발전소가 불안하니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폐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월성 1호기와 같은 캔두(CANDU)형 원자로가 사실상 캐나다와 한국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원자로는 한때 캐나다의 수출 주력모델로 육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팔린 같은 모델의 29기 원자로 가운데 21기가 캐나다와 한국에 있다. 4기의 캔두형 원자로가 있는 한국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 2위의 캔두형 원자로 보유국이다. 그만큼 ‘어떤 이유’로 덜 팔린 모델인 것이다.

핵발전소 안전을 담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운영 경험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캔두형 원자로의 시험무대를 제공한 셈이다. 1980~90년대 캐나다에서는 안전상의 문제로 수년씩 핵발전소 가동을 정지하기도 했다. 이를 감안한다면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를 최대한 정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전 세계적인 탈핵 열풍과 국민들의 반발로 캐나다는 1993년 달링턴 4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이후 20년째 단 한 기의 핵발전소도 짓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국제 핵산업계는 위축됐고 월성 1호기를 설계하고 건설한 캐나다원자력공사는 회사 일부가 분사되고 민영화되는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이 원자로를 한국 정부와 전력당국은 왜 이처럼 애지중지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핵발전소 폐쇄는 궁극적으로 탈핵으로 가는 작은 물꼬가 될 수 있다.

54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며 전 세계 핵산업계를 선도하던 일본에 탈핵은 받아들이기 힘든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핵사고(후쿠시마 핵사고)를 겪으며 탈핵은 국민적인 관심사로 바뀌었다. 미국의 압력과 자국 핵산업계의 반발로 탈핵 계획이 지연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일본 국민에게 탈핵은 현실이고 실현가능하며 반드시 실천해야 할 목표가 됐다.

월성 1호기 폐쇄는 한국 사회에도 탈핵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제공할 것이다. 더불어 핵발전소 폐쇄를 통해 노후 원전의 안전성이 공개될 것이다. 그동안 관계기관이 공개를 꺼리던 폐쇄비용과 기간, 절차 등도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월성 1호기와 고리 1호기처럼 수명이 다 된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면 지금은 급진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탈핵이 한국인에게도 조만간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