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반핵의사회 노태맹 운영위원 참가기 제25회 일본 반핵의사회(PANW) 모임을 다녀와서

일본 지열발전 0.1%인 이유, “원전 하나로, 핵마피아 탓”
제25회 일본 반핵의사회(PANW) 모임을 다녀와서

노태맹 의학전문기자

 

지난 11월 1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일본 후쿠오카에서 제25회 핵전쟁을 반대하고 핵병기의 폐절을 요구하는 의사, 의학자의 모임(반핵의사회 PANW)이 있었다. ‘핵은 절대 안돼!! 만들어 내자, 안전한 미래, 핵 없는 세계~’라는 부제를 단 이 모임에 본 기자를 포함한 한국의 반핵의사회 소속 3명이 참석했다.

▲지난 11월 1, 2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25회 일본 반핵의사회(PANW) 모임. [사진=PANW 제공]

두 번째 학습강연 세션에서 ‘한국 반핵운동에서 의료인의 실천 활동’이라는 주제 발표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발표 보다는 일본 사람들은 후쿠시마 이후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하는 궁금증을 직접 몸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목적이 더 컸다.

230여명의 의사, 간호사, 의과대학 학생, 시민들이 가을비를 맞으며 일본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넓은 강당을 채웠다. 강당 입구 부스에는 온갖 핵관련 책자들과 유인물이 전시됐다.

첫 번째 강연에 나선 이또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헌법을 살리고 지구를 지키자’는 제목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한 경험을 살려 여러 나라의 핵과 에너지 정책에 대해 정열적으로 강연했다.

그는 브라질 공항에 내리면 냄새부터가 다르다는 경험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또 전 기자는 “브라질은 오래전부터 사탕수수로부터 에탄올을 분리하여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일본은 시대를 역행해 원전하나로만 가겠다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일도 30년 전부터 유채꽃으로부터 기름을 추출하는 기술에 박차를 가했는데 유채꽃밭의 면적만 해도 일본의 한 개 현만한 넓이. 게다가 그 천연 에너지 산업이 37만 명의 고용을 증진시키기도 했다는 것을 그는 강조했다.

유럽의 경우, 오스트리아는 1999년 헌법으로 원전을 금지하고 있으며 스위스는 처리 비용의 문제를 들어 경제계조차 반대하고 나섰다. 이탈리아는 2011년 시민들의 발의로 국민투표를 했고 50% 이상의 투표율에 94%의 국민들의 반대로 원전 정책을 포기했다는 것. 유럽은 아무리 돈이 들더라도 30년 후를 평가하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은 과거로부터 지금을 생각하는 시대역행적 사고를 한다고 그는 평가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필리핀도 1986년 체르노빌 사건 이후 시민들의 힘으로 원전 정책을 좌절시키고 지열 발전으로 나갔다는 것.

▲일본의 지열발전소. 일본은 화산이 많고, 지열발전을 위한 터빈 기술력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체 발전에서 지열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0.1%에 불과하다. [사진=ja.wikipedia]

핵문제가 정치의 문제라는 것은 지열 발전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일본의 지열발전은 전체 전력생산의 0.04%. (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지열발전 비율은 0.1%) 그런데 그는 화산이 많은 일본 전역에서 지열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면 원전 20기분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과 전 세계 지열 터빈 만드는 회사의 71%가 일본 기술인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이 이러한 대안 전력 정책을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원전 하나로 가겠다는 정책 때문이고 이를 지지하는 원전 마피아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주변 일본의 어린이들은 운동회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하루에 2시간 이상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민당 보수 세력과 요미우리 신문과 같은 보수 언론, 그리고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이 지배하는 일본을 극복하는 긴 싸움에 나서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강조했다.

기념 강연에 이은 학습 강연 첫 번째 세션은 코케츠 아쯔시 야마구찌 대학 부학장의 일중, 일한 관계에 대한 역사 강연. 그는 이토 히로부미, 만주국의 리더이자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현 아베 총리로 이어지는 일본 보수주의 계보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서는 그 긴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자) 그런데 일본은 역사관에서 왜 이런 패착을 보이고 있는가? 그는 전후 일본 역사 교육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가 바로 한국의 문제이고 한국 역사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양국은 많이 닮았다. 국가가 앞으로 어떠한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만 생각하도록 방임했다는 것이다.

그는 후쿠오카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택시 기사는 국가의 은혜는 대기업만 받을 뿐 중소기업은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는 점점 양극화되어가고 빈부 격차도 심해진다는 것, 아베 정권도 제대로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고 했다. (한국 택시 기사들과 너무 닮았다) 그럼 왜 일본 사람들은 아베 내각을 지지하는 것일까? 아쯔시 부학장은 아베가 그래도 뭔가를 해 주겠지 어딘가에는 길이 있겠지 하는 일본인들의 막연한 기대, 자민당만이 아닌 여러 민족주의적 주장의 팽배, 압도적인 미디어의 힘들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아베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면 바로 한국이다.) 그의 정치적 성향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일본 내 시민 사회의 성숙만이 이러한 일본의 제반 문제와 핵문제를 푸는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본 기자도 한국반핵의사회 회원으로 PANW 모임에 참석했다. (가운데) [사진=PANW 제공]

유난히 깨끗한 일본의 거리, 유난히 친절한 택시 기사들. 누군가의 설명처럼 일본인들의 친절은 과거 무사들이 활개를 치던 시대에 일반 민중들이 살아남기 위한 가면과 같은 것일까? 우리 한국 반핵의사회의 발표 주제인 한국의 반핵 활동과 의료인의 활동, 짧은 밀양과 청도 송전탑 싸움 동영상, 그리고 짧은 질의응답으로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거리의 일본인들을 찬찬히 보았다. 기시감 같은 것? 나는 대구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을 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낯익음이 쓸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일본은 움직이고 있었다. 저녁의 리셉션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며 서로 인사를 하였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젊은이들의 참여가 부쩍 많이 늘었다고 했다. 90이 다 되어가는 노 의사부터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의과대학생까지, 많은 수도 아니고 언제나 소수자인 그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중요한 희망 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한 백발의 인상 좋은 일본 소아과 의사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본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후쿠시마 사고를 겪었다고.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금 후쿠시마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반드시 우리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리 가슴 속의 이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나는 지금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태맹 의학전문기자 arche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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