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유럽 원전 대부분서 안전문제 발견…“설비보강 시급”

유럽 원전 대부분서 안전문제 발견…“설비보강 시급”

EU 집행위 ‘원전 내구성진단’ 결과

[한겨레신문] 기사등록 : 2012-10-03 오후 07:08:10 기사수정 : 2012-10-03 오후 09:37:01 길윤형 기자

EU 집행위 ‘원전 내구성진단’ 결과

18개국 143기 3단계 조사…“설비개선에 250억 유로 필요”

프랑스가 가장 심각…지진 등 자연재해 대응시스템 ‘미비’

영국은 비상통제실도 없어…한쪽선 “테러 대책도 세워야”

유럽에 있는 거의 모든 원자력발전소에서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돼 시급한 보강조처가 필요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번졌던 탈원전 주장이 다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유럽 18개국의 원자로 143기(134기 가동중)를 대상으로 지난해 6월부터 ‘내구성 진단’(스트레스 테스트)을 벌인 결과 안전상 개선점 수백개가 발견됐으며,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억유로(14조3000억원)에서 250억유로(35조9000억원)가 필요하다고 분석됐다고 보도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던 해일 같은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원전의 안전 시스템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3단계에 걸쳐 검토한 결과 “사실상 유럽의 모든 원전의 안전설비를 보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장 가동을 멈춰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 원자로는 없었지만, 보고서는 각국에 2015년까지 지적사항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4일 최종보고서가 나오면 18~19일 유럽연합 정상회의가 이를 최종승인할 예정이다.

3단계에 걸친 조사는 지난해 6월 시작됐다. 조사 대상은 유럽연합에서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14개국과 원전을 신규로 기획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유럽연합은 아니지만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스위스,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등의 원자로였다.

1차 조사는 각 원자로 사업자가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원자로가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 또는 비행기 추락 같은 참사로 전원이 끊기는 등의 긴급사태가 발생할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점검한 자체 조사였다. 2차는 이를 각국의 원전 규제기관이 꼼꼼히 재검토하는 조사였다.

이 조사가 끝나자 유럽연합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유럽연합 집행위 차원의 3차 각국별 비교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4월께 보고서가 어느 정도 완성됐지만, 내용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에 따라 추가 조사가 이어졌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발견된 나라는 유럽 제일의 원전 대국 프랑스다. 프랑스에서 가동중인 원자로 58기 대부분에서 대규모 홍수와 지진에 대비한 안전설비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영국의 발전소들은 대부분 주 통제실이 방사능에 오염됐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비상 통제실이 없었고, 독일 원전 12기도 “중대한 재해가 일어났을 때 지켜야 하는 가이드라인이 불충분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특히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2개국의 원자로 4기는 전력공급이 중단되면 자체 발전기로 채 1시간도 운용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원전에서는 전기가 끊겼을 경우 자동으로 작동하는 비상발전 설비가 없다는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다. 원자로의 안전을 담보하는 냉각장치는 전기로 가동되기 때문에 비상발전 설비가 없으면 원자로 폭발과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은 세계에서 처음 상업용 원전이 가동돼 노후 원전이 많은데다, 30㎞ 이내에 10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원자로가 111기에 이르는 등 원전 위험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게다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아픔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보고서의 충격은 상당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유럽의 탈핵론자들은 이런 조사도 불충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탈핵론자이자 유럽의회 의원인 야니크 자도는 “이번에 조사되지 않은 화재, 폭발, 테러 등의 상황 등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이번 조사를 계기로 2022년부터 자국 내의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밝힌 독일과 같은 탈핵 바람이 다시 힘을 받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점이 부담이다. 지난 6월 현재 유럽연합의 전체 발전량 가운데 원자력 발전의 비율은 3분의 1 정도지만, ‘원전 대국’인 프랑스의 경우 이 비중은 80%까지 올라간다.

녹색당 소속의 레베카 하름스 유럽의회 의원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유럽 집행위는 안전하지 않거나 노후한 원자로의 폐쇄를 명령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안전상의 결함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