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밀양 농성장 행정대집행 예고 “마지막 농성장 지켜달라”인터뷰 이계삼 밀양 송전탑 대책위 사무국장 “송전탑이 들어서도 끝 아니다”

밀양 농성장 행정대집행 예고 “마지막 농성장 지켜달라”

[인터뷰] 이계삼 밀양 송전탑 대책위 사무국장 “송전탑이 들어서도 끝 아니다”
입력 : 2014-04-09 11:13:21 노출 : 2014.04.10 16:13:12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은 송전탑 싸움의 상징이었다. 2012년 1월 고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한 곳이 보라마을이다. 102번 송전탑은 이치우 어르신의 논 한가운데 세워질 예정이었고, 그의 죽음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전국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런 보라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한전과의 보상합의를 끝냈다. 마지막까지 합의를 거부하던 9가구가 합의를 한 것이다.

그러나 합의를 한 주민들도, 남아서 싸우는 다른 마을 주민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싸우는 이들은 보라마을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탈해했고 보라마을 이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살기는 살아있는데, 미안해서 대책위에 가지도 못한다.”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제 30개 마을 중에 합의를 하지 않은 마을은 다섯 곳이다. 지난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던 주민 2900여명 중 200여명만이 농성장을 지키며 13·14일 예정된 행정대집행에 맞서고 있다.

이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가 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41) 사무국장이다. 그는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됐다. 지금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90대 10의 싸움을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는 기적적인 숫자”라고 말했다. 그만큼 한전의 설득과 회유가 집요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개별 보상안’이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전체 보상금 185억원 가운데 40%인 74억원을 개별 가구에 직접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74억원을 5개면 1800여 가구에 분배하면 한 가구당 400만원 꼴이다. 당시 대책위는 “돈 400만원을 더 받기 위해 8년간 싸운 것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대책위에 따르면 한전은 “지금 합의하지 않으면 개별 보상금을 마을 공동기금으로 돌리겠다.” 등의 말로 주민들을 협박했다.

 ▲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 ⓒ연합뉴스

10년째 이어진 싸움, 법 위반이 밝혀져도 중지되지 않는 공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명의 어르신.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내적 갈등은 깊어졌다. 패배감과 무력감, 무너진 마을 공동체 속에서 지치는 주민들이 나타났다. 이 사무국장은 “공사에 동의하거나 한전과의 갈등이 해결돼서 합의를 하는 게 아니라, 지쳐서 합의하는 것”이라며 “합의하는 주민들이 점점 늘어나면 남은 주민들은 정서적으로 체념 하게 된다.”고 말했다.

‘돈 때문에’ 마을 공동체는 산산조각 났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 이들은 ‘투쟁은 내가 했는데, 그 혜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들이 받았다’는 허망함이 있다. 한 마을 안에서도 보상금을 두고 어떻게 쓸 것인지 갑론을박이 오간다. “한전이 돈으로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을 했다. 한 동네 안에서 서로 돈으로 갈라지게 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밀양은 지금 돈을 두고 아비규환이다.”

그런 와중에 송전탑 공사는 하나하나 진행 중이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이지만 결국 밀양에 송전탑은 모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싸우는 주민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주민들은 지금 실존적인 질문에 맞닥뜨렸다. 내 10년 투쟁의 결과가 이것인가. 지난 10년은 내게 무엇인가 하는 고민들이다. 주민들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농성장을 지키고 농사를 지으며 긴 싸움을 준비 중이다. “지쳐서 합의를 한 주민들도 있지만, 애초 주민들이 원했던 것은 보상금이 아니었다. 합의서의 굴욕적인 조항도 문제다. 합의서에는 ‘앞으로는 공사 방해를 하지 않겠다’ ‘앞으로 있을 피해에 한전은 책임이 없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난 투쟁의 시간을 부정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밀양에 필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연대다. 현재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곳 중 4곳에 농성장이 있다. 100여명의 주민들이 교대로 농성장을 지킨다. 그러나 한전은 오는 13일과 14일에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남은 농성장 4곳이 밀양 투쟁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이 사무국장은 “마지막까지 싸우려는 주민들이 농성장을 사수하고 싶어한다. 밀양에 와서 같이 현장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사진=이치열 기자

송전탑이 완공되면 주민들은 지는 것일까. 이 사무국장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모두가 알아서 기는 시대에 밀양 어르신들은 막강한 국가권력을 향해 싸우신 훌륭한 분들이다. 당신들 덕택에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엄청난 폭력과 불공정의 바탕 위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사회가 성숙하려면 배우는 게 있어야 하는데, 어르신들은 당신들의 투쟁으로 우리사회에 배움을 주었다. 이제 우리사회가 어르신들에게 훈장을 달아줘야 한다.”

실제 밀양 주민들의 투쟁으로 전기와 핵발전소의 문제, 지역 간 불균형 문제, 국가산업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가폭력 등이 공론화 됐다. 이 사무국장은 “전력산업계가 전기를 막 쓸 수 있게 핵발전소를 짓고, 대기업들의 수출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원가 이하의 전기를 공급하는 것, 온갖 위법이 밝혀졌는데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국가폭력의 문제 등이 알려졌다.”고 말했다.

또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장기적 과제도 남아있다. 이 사무국장은 이를 ‘밀양투쟁 시즌2’라고 표현했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에 책임을 묻는 문제, 송전탑 완공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재산권과 건강권 등을 밀양투쟁 시즌2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런 것들을 끝까지 문제제기 하고, 또 어르신들의 남은 생애에 연대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그는 밀양 주민이라는 것 외에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송전탑이 지나가는 자리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김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0년 전 고향인 밀양으로 갔다. 그러다 고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으로 밀양 송전탑 싸움에 결합하게 됐다. 그가 아직도 싸우는 이유를 물었다.

“참 심심하고 재미없는 표현인데 의리죠 의리. 대책위에 의지하는 주민들, 주변에서 이 싸움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가 없다. 또 저 자신도 이 싸움을 하면서 너무 많은 폭력이나 부당함을 봤기 때문에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소박한 도덕 감정이 조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