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밀양으로 가는 길 – 고 유한숙 어른 추모 100일째를 맞아. 시인 송경동

밀양으로 가는 길 – 고 유한숙 어른 추모 100일째를 맞아. 시인 송경동

밀양은 어디에 있나요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버스를 타고 가면 되나요
기차를 타고 가면 되나요

밀양으로 가면서는 어떤 꿈을 꾸면 되나요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보리싹이 익는
아름다운 고장을 생각하면 되나요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논물을 대는, 밭고랑을 일구는
농부들의 평화로운 마을을 꿈꾸면 되나요

아, 그러나 지금 밀양은 폐허의 땅
원전마피아들의 짜릿한 속셈만 흐르는 곳
푼돈의 모략이 판치고
죽음의 전류가 관통하는 메마른 땅
계엄의 헬리콥터가 뜨고
점령지의 병사들이 진주하는 곳
거기 나뭇가지마다 목줄을 걸고 있는 난쟁이들
평생을 파먹던 땅에 흙무덤을 파고 있는 검둥이들
날마다 걷어 채이고 끌려가는 무지랭이들
논바닥에 엎어지고 산비탈로 굴러 떨어지며
오열하는 사람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함께 절규하는 사람들

도대체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요
돌아보면 밀양 아닌 곳이 없네요
눈물 아닌 곳이 없네요
아픔 아닌 곳이 설움 아닌 곳이
분노 아닌 곳이 없네요

아, 어디로 가야 우리들의 밀양이 있나요
광화문 네거리에서 무릎꿇고 나랏님께 절하며 상소문이라도 읽어야 하나요
동학난 때처럼 장총을 들고 그리움에 지쳐 산으로 오르면 되나요
죽창이라도 들어 저 가렴주구들의 뱃대지를 찌르면 되나요
폭동이라도 반역이라도 되어야 하나요

아, 도대체 그 아름다운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넉넉한 인정이 흐르고
작고 낮은 이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 땅은 어디에 있나요
자연과 인간이 흙과 감자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져 튼실히 익어갈 수 있는
그 생명의 땅은 어디에 있는가요

이시우 어른
유한숙 어른
입 좀 열어 얘기 좀 해주세요
왜 그렇게 말이 없으신가요
유한숙 어른께서 그 차디찬 냉동고를 나와
이제 그만 저 참된 우주의 밀알 하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그래요. 알겠어요
우리에겐 다른 빛이 필요하지요
어떤 폭력에도 굴욕에도 꺾이지 않는
존엄한 인간성이라는 그 영롱한 빛
어떤 핵분열도 따라 올 수 없는 그 연대의 빛
어떤 핵폭발도 따라 올 수 없는 분노의 빛
어른께서 놓아두고 간 그 생명의 빛

난 그 빛을 찾아 오늘도 꿈속마다
나의 밀양으로 끝없이 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