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기자회견문>대물림되는 원폭 피해의 고통,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라

<기자회견문>

대물림되는 원폭 피해의 고통,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라

 

1945년 8월 6일과 9일 원자폭탄에 의해 당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한인 동포 7만 명 가량이 원폭에 피폭되었다. 4만 명이 희생되고, 기적적으로 생환한 피폭자들도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제대로 된 치료와 구호도 받지 못한 채 질병과 가난, 차별 등으로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러나 원폭의 더 심각한 참상은 그 피해가 당대에만 머무르지 않고, 신체적 ․정신적인 질병과 후유증은 물론, 가난과 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 고통이 후세대로 대물림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 국내에는 2,670여 명의 생존피폭자가 등록되어 있고, 이외에도 미등록 피폭자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약 7,500명에서 1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원폭피해자 2세의 경우, 국가적 전수조사가 실시된 바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와 실태조차 파악되고 있지 못하다. 그 가운데 <한국원폭2세환우회>에 등록된 피폭2세 회원의 숫자는 1천 여 명을 훌쩍 넘고 있다. 1991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30% 가까운 피폭 2세들이 건강과 자녀 출산 등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고 밝혔다.

 

긴 세월 국가로부터 버림받아 왔던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2세‘환우’들은 피해자의 현실을 알리며,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서 원폭피해자 1,2세의 정확한 피해 진상조사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청원, 발의하고 특별법 제정을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싸워 왔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번번이 ‘부모의 피폭과 2세 질환의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일본에서도 2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은 없다’거나 ‘일본에서 관련 조사를 많이 하고 있으니 일본의 자료를 원용하면 되지 한국에서 굳이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말을  반복하며, 국내 피폭2세에 관한 실태조사의 필요성조차 부인하는 가운데 특별법 제정은 무산됐다.

 

그때마다 언급된 일본의 조사 결과란 ‘방사선영향연구소’의 조사결과로, 그 연구대상 설정과 조사방법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자들이 비판하며 대안적인 연구결과를 내 왔다. 방사선으로 인한 유전적 손상은 동식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미 입증되었으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인과관계가 규명되고 있다. 남태평양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 피폭남성의 생식세포 파괴에 의한 정자 수 제로 데이터 보고(1980년), 중국 자오 우슈(Shu XO) 등의 상하이 리포트(1988년), 영국 연구팀의 핵시설종업원 자녀에 대한 연구(1990, 1993,1999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및 구소련 핵실험장 주변 피해자 자녀에 대한 연구(1996, 2002, 2010년), 앨리스 스튜어트의 연구(1970년), 일본 원폭후장애연구회의 조사(2012년) 등에서 부모의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생식세포 파괴 및 자녀의 암과 백혈병, 기형, 유산‧사산, 돌연변이 증가 등이 속속 보고되었다.

 

더욱이 2004년 국가인권위 보고서 등 국내에서 실시된 기존의 건강실태조사에서 이미 피폭1,2세들의 다양한 피해 사례가 보고된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는 국내 피폭자와 후세대를 대상으로 한 정밀한 후속조사를 조속히 서둘러야만 한다. 또, 여기서 주의할 점은 유전성과 인과관계 규명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원폭피해자와 피해자 후손의 고통이라 함은 직접적인 질병 발생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원폭피해자와 그 자녀는 당장 질병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 신체의 치유능력 자체가 방사선 피폭의 잠재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피폭 때문에 그 후 일생동안 겪어야 했던 차별과 고통, 가난과 질병 등으로 인해 그 가족의 삶에는 건강피해와 더불어 정신적 상처와 다양한 사회적 피해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복지적 관점에 따른 국가적 대책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 국내 실태조사 필요성을 부인하며 국내 피폭자와 피폭2세 지원법 제정을 가로막는다면, 이는 정부가 헌법적 책임을 위반하는 중대한 책임 유기이자,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제 더는 늦출 수 없다. 고령이 된 원폭피해자 1세대는 물론이고, 2세대의 평균 연령도 40-50대를 넘어가고 있다. 더욱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그 나이를 막론하고 하루 하루가 피말리는 시간들이다. 원폭피해자 1세대가 사망하고 나면, 한국인 원폭피해 실태의 전모를 규명하는 일도, 후세대에 대한 역학조사와 지원정책 수립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다. 현재 제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소속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과 민주통합당 이학영 의원의 관련법안이 각각 발의된 것과, 경상남도가 그 조례에 근거하여 도내 원폭피해자 1,2,3세에 대한 첫 전수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에 우리는 국내 원폭피해자와 피해자 후손을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 및 정부의 신속한 역학조사, 실태조사 그리고 지원정책 수립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2013년 3월 18일

 

 

원폭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독교평화센터, 김형률추모사업회, 녹색당, 녹색연합, 대구KYC,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인권위원회, 반핵의사회, 불교생명윤리협회, 생명평화마중물, 에너지정의행동,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의평화불교연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참여불교재가연대, 평화박물관,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교회희망봉사단, 한국YMCA전국연맹생명평화센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한국원폭2세환우회, 합천평화의집), 보건의료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