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차기 정부에 떠넘겨진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

이명박 정부는 임기가 끝나가는 무렵에야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문제를 두고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엊그제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지식경제부 및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이 참석한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고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내용인즉 내년 4월쯤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2014년까지 저장고 건설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이다. 2009년 7월 공론화 위원장으로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내정까지 해놓고 유야무야하더니, 골치 아픈 공론화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떠맡으라는 주문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인체에 무해하게 되기까지 10만년이 걸리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국내 23개 원전에서 해마다 1만7000다발(1다발=핵연료봉 256~289개 묶음)이 배출된다. 현재 원전 내 임시저장소에 보관하고 있지만 수용능력이 벌써 70%를 넘었다.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처리 또는 저장 문제는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과소비해온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 방식은 앞뒤가 뒤바뀌었다. 2024년이면 모든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논리만 집중 강조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1990년대 이후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 시설을 마련하는 데만도 심각한 진통을 겪은 바 있다. 폐기물 처리시설 후보지 선정을 놓고 1990년 안면도에서 시작돼 굴업도와 부안을 거치면서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번엔 더욱 시간적 여유를 두고 후보지역의 지질학적 안정성 및 환경영향 평가를 치밀하게 해야 한다. 정부가 투명하게 관련자료를 공개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 차원에서 50년, 100년 뒤를 내다보는 에너지 대계를 새로 작성하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하고 그 토대 위에서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 문제를 고민하자고 나서야 비로소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쉬울 것이다. 그러는 동안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을 잠정 확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탈원전에 국가적 역량을 쏟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원전장사’에 몰입해왔다. 차기 정부는 지난 5년간 상업적인 가치관에 매몰됐던 원전정책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