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동향

‘원전 부품 안전의 진실’

‘원전 부품 안전의 진실’

[경향신문] 입력 : 2012-11-07 02:57:53ㅣ수정 : 2012-11-07 03:00:04

 

(1) 해외검증기관 품질인증서 20% ‘위조’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원전 부품은 도대체 얼마나 되나. 위조된 부품이 들어갔다고 확인된 5곳을 제외하고 다른 원전은 괜찮은 것인가.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 발표가 거짓으로 드러나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품질검증서 위조 여부를 조사한 업체(8개)보다 앞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할 업체(22개)가 훨씬 많아지면서 원전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원전에 사용되는 안전성품목(Q등급)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안전성품목은 원전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품들이다. 안전성품목은 1, 2, 3등급으로 나뉜다. 국내 원전 부품 업체들이 생산해 한수원에 납품하는 부품은 비안전등급으로 분류되는 일반규격품 정도다.

 

원전에 들어가는 부품은 250만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이번에 문제가 된 안전성품목은 40%인 100만개 정도로 분류되고 있다. 나머지 150만개는 일반규격품에 해당한다.

한수원의 부품 공급 경로는 통상 4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한수원이 규격품을 사서 시험기관(한국인정기구)에 제품 시험을 의뢰하는 방식, 둘째는 검증업체가 제품을 사 인정한 뒤 판매하는 방식, 셋째는 한수원 중앙연구원이 검증하는 방식, 넷째는 공급업체가 검증업체에 의뢰해 검증서를 받고 납품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네번째 방식이다.

이번 한수원 조사 결과 해외 검증기관의 품질인증서 위조 비율은 20%다. 10건 중 2건이 위조된 셈이다. 안전성품목 100만개에 이를 단순 대입할 경우 20만개의 부품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제 조사가 확대될 경우 위조된 부품수가 크게 늘면서 이들 부품이 들어간 원전수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국내에서 가동 중인 대부분의 원전에 문제 부품이 설치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6일 “1999년 이전에는 부품에 대해 일종의 감리 시스템이 있었다”면서 “해외에서 부품을 들여왔더라도 국내에서 다시 한번 성능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사라지다 보니 부품 관리가 허술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2) 조사대상 납품업체 30곳 중 8곳만 조사

한수원은 국내 부품 생산업체와 부품 수입업체를 포함해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모두 1600여개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해외로부터 안전성품목을 들여올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업체는 190개 정도다. 이 가운데 지난 10년간 한수원에 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는 30개로 압축된다. 한수원이 이번에 품질검증서 위조 여부를 조사한 업체는 8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22개 업체로부터도 품질검증서를 받아 위조 여부를 조사해봐야 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나머지 조사 대상 업체는 22개지만 조사 대상 건수는 아주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실제 몇 건이 조사 대상인지도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부품 안전성 관리가 1999년부터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업무에서 빠지다 보니 부품 수입업체에 대한 관리가 더 허술해졌다”면서 “다른 규제는 완화하더라도 원전 안전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 저가낙찰제 탓에 품질 떨어지고 ‘비리’

원전 부품 시장 규모는 연간 수백억원대로 추정된다. 이 시장을 놓고 납품업체들은 피튀기는 쟁탈전을 하고 있다. 납품 전쟁이 치열하다 보니 한수원 품질관리 직원들과 검은 거래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부터 발생한 부품 납품 비리와 관련돼 구속기소된 한수원 직원은 23명이나 된다.

지경부 관계자는 “이번에 한수원에 품질검증서 위조를 제보한 업체도 납품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 중 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지난 2월 고리 원전 정전 은폐 이후 납품 등에 대해 최고가치낙찰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면서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 저가낙찰제에 맞추려다 보니 싼 가격에 납품해야 하고, 부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 검증서 위조, 부품 질 저하 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장희 서울대 원자력정책전문가 주임교수는 “원전 부품 수입업체 중에는 보따리장사들이 많다”며 “서로 경쟁해서 싼 가격에 납품하려다 보니 부품 질도 떨어질 수 있다. 이번 외부 업체 제보도 이런 살벌한 시장 점유 경쟁 속에서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이 들고 시간이 들더라도 원전 안전을 위해서는 안전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태 선임기자 cbtae@kyunghyang.com>